등록 : 2011.09.01 19:17
수정 : 2011.09.01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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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남구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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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조건은 ‘독립성’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이미 무너졌다
인간이 만든 기계는 흠을 갖고 있다. 완전하지 못한 인간이 그것을 움직이니, 사고는 피할 수 없다.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를 보면서 다시금 이를 뼈저리게 깨닫는다. 돌이켜 보면 큰 사고는 공교롭게도 어이없는 일이 여러 가지 겹쳐 일어난다.
후쿠시마 원전에 쓰인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마크1’ 원자로는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회사 일부 전문가들이 “모두 철거해야 한다”고 주장해 큰 논란을 빚었던 기종이다. 수소폭발이 쉽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설치된 원자로는 철거되지 않았다. 위험하다고 주장했던 이들이 회사를 떠나는 것으로 결점은 묻혔다.
후쿠시마 원전은 비상용 디젤발전기가 지하에 설치돼 있었다. 해일이 밀려올 경우 가장 먼저 침수피해를 당하게 돼 있었다. 허리케인이 많이 발생하는 미국을 기준으로 한 설계도를 일본에서 그대로 쓴 탓이다. 도쿄전력은 애초 해발 35m이던 발전소 터를 25m나 깎아내 해발 10m 높이로 낮췄다. 냉각용 바닷물을 끌어쓰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지난 3월11일 10m가 넘는 해일이 밀려들자, 비상용 디젤발전기는 모두 먹통이 됐다.
후쿠시마에 대규모 해일이 밀려올 수 있다는 경고는 많았다. 일부 연구가들은 센다이 평야의 퇴적층을 조사해 869년에 일어난 규모 8.3~8.6의 조간지진과 같은 규모의 지진이 1000년 주기로 일어났음을 밝히고, 대비하라고 경고했다. 1933년 미야기현 동쪽 앞바다에서 일어난 쇼와산리쿠지진은 규모가 8.1이었고 해일의 최고 높이가 28.7m였다. 후쿠시마 원전을 운영하던 도쿄전력도 큰 지진이 일어나면 10m 이상의 해일이 밀려올 것임을 파악했다. 그러나 아무런 조처도 하지 않았다.
일본의 원자력사고 손해배상 제도는 사고에 대비해 원전사업자와 정부가 보험을 들게 하고 있다. 대규모 천재지변에 따른 사고는 정부가 배상하도록 하고 있다. 전력회사로 하여금 안전에 투자하기보다는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게 하는 구조이다. 전력회사의 도덕적 해이를 막아야 할 곳이 바로 원자력안전보안원과 같은 기구였다.
하지만 보안원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보안원은 원자력 산업을 국책으로 추진해온 경제산업성 산하에 있었다. 보안원 간부는 경산성 및 전력회사와 잘 지내다 보면 나중에 전력회사의 임원이 될 수 있으니, 제대로 된 감시자 구실을 하기가 애초에 어려웠다. 게다가 보안원엔 전력회사에서 퇴직한 이들이 많았다. 30년 쓰도록 설계된 원전이 40년 넘게 가동되고, 지진·해일 대비가 소홀한 원전들이 계속 움직여온 데는 이런 문제가 있었다.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뒤 이런 문제점을 깊이 반성했다. 그리고 경산성 산하의 원자력안전보안원과 내각부 소속의 원자력안전위원회를 통폐합해 원자력안전청을 만들고, 이를 환경성 산하에 두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이번에 원자력안전위원회를 대통령 직속 기구로 신설해 10월에 출범시킨다. 일본의 사례를 보면, 이 기구가 제구실을 하는 데 가장 중요한 조건은 ‘독립성’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는 이미 무너졌다. 정부는 초대 위원장(장관급)에 강창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명예교수를 내정했다. 원전사업자인 두산중공업의 사외이사를 지내고, 업계 단체인 한국원자력산업회의 부회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그는 지난 2004년 전북 부안 방폐장 문제 때는 “서울대 관악캠퍼스 지하 암반에 핵폐기물 처분장을 만들자”고 주장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미 여러 개의 원자력 안전 관련 기구를 두고 있는 판에, 업계를 대변할 게 뻔한 원자력안전위를 왜 또 만드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새 일자리 창출인가?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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