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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1.08.25 19:25 수정 : 2011.11.21 15:51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중국이 떠오르자 ‘미국이라는 답안지’에
길들여진 우리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모든 길은 중국으로 통한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중국에 오는 한국인이 부쩍 늘었다. 기업과 유학생들의 중국행 물결은 이미 오래되었지만, 요즘은 정치인·공무원·학자 등 각계각층의 한국인들이 업무·연수·교류·회의 등 수많은 기회를 통해 중국을 찾는다.

‘중국을 알아야만 한다’는 한국 사회의 굳은 결심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중 관계가 어떤 한계에 부닥쳤다고 답답해하는 이들이 많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일해온 한국 기업의 임원은 ‘미국식 답안지’ 얘기를 꺼냈다.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 중국 인재를 뽑거나 평가할 때 기준은 미국의 인성검사 질문지에 기초해 만들어진 한국 인성검사”라며 “중국과 동떨어진 잣대를 들이대 중국인들과 소통의 한계에 부닥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현재 한-중 관계의 일면”이라고 했다.

다른 한 기업인은 중국 정부 고위 관계자와 사적인 자리에서 나눈 이야기를 꺼냈다. “중국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고위 인사가 ‘앞으로 5년간 한국이 중국에 잘하라’고 하더라. 중국이 경제성장 모델을 전환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될 향후 5년간 한국이 잘하면 중국과 좋은 인연을 길게 맺을 수 있는데, 지금으로선 한국이 미국과만 너무 가깝다고 섭섭해하더라”고 그는 말했다. 또 “(한국) 정부에서 대기업에 중국 주요 인사를 소개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많다”며 “우리 지도층이 미국과만 인연을 맺어온 사람들이라 중국과는 형식적인 교류 행사만 빈번할 뿐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눌 정도의 인맥은 크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진단한다.

한 정부 당국자는 “솔직히 이제는 그만 좀 오락가락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친미와 친중, 햇볕과 강경책을 극과 극으로 오가는 상황에서 공무원으로선 정부 정책을 따라 일할 수밖에 없지만, 숨가쁜 국제정세 속에서 한국이 가야 할 올바른 길은 어쨌든 하나일 텐데 아쉽다.”

중국이 떠오르자 ‘미국이라는 답안지’, ‘미국의 좌표’에 길들여진 우리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한-미 동맹 중심의 외교·안보부터, 서구의 기준으로 중국을 비판하거나 중국을 ‘불량식품 공화국’ 정도로 무시하려는 편견은 여전히 굳건하다. 중국에 온 많은 한국인들이 ‘영어도 안 통하는 후진국’이라는 말을 스스럼없이 한다.

중국을 ‘북한 편만 드는 악당’ 이미지로 각인시켜 한-미 군사동맹 강화를 위한 구실로 삼는 흐름도 강해지고 있다. 중국 첫 항공모함 바랴크호가 첫 해상 시운항에 나섰다는 뉴스는 보수언론을 통해 ‘중국의 위협을 막기 위해 제주에 해군기지를 지을 필요가 확실해졌다’는 논리로 자동 전환된다.

물론 중국의 부상을 만만하게 보거나 중국의 틀로 세계를 볼 수는 없다. 중국 내부에는 분명 강경파의 위험한 목소리도 존재한다. 1882년 임오군란 이후 청이 조선에 군대를 파견해 대원군을 납치하고 조선의 내정·외교에 적극 간섭해 제국주의적 태도를 보였던 역사의 기억도 있다. 그래서 더욱, 중국의 부상은 우리가 신중하게 고민해야 할 숙제다.


60년 넘게 익숙했던 ‘미국의 세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복잡한 국제정치의 체스판 위에서 미국과 중국 어느 한쪽 편이 아닌 우리의 좌표를 찾고, 양쪽을 더욱 깊게 얘기하고 속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인력을 키우고, 우정과 경계를 유지하는 준비가 필요하다.

지난 24일은 한-중 수교 19돌이었다. 한-중 관계가 미성년의 마지막 생일을 막 지났다. 한반도 주변 각국의 정권교체가 한꺼번에 맞물려 대변환이 예고된 내년, 20돌 성년을 맞는 한-중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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