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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6.03 20:24 수정 : 2010.06.03 20:24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





21년 전 오늘, 중국 인민해방군이 인민을 향해 총을 겨눴다.

개혁을 지지하다 숙청당한 채 사망한 후야오방 공산당 총서기를 추모하는 행렬이 민주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의 거대한 물결로 바뀌어 천안문 광장을 가득 메웠다. 학생들은 광장에 ‘민주주의 여신상’을 세우고 단식농성을 이어갔다. 100만이 넘는 시위대의 열기에 공산당 지도부는 무력진압을 결정했다.

수도를 포위한 인민해방군, 홀로 탱크를 막아선 청년, 수천명의 죽음, 체포와 처벌 뒤 중국은 모든 것을 잊었다는 듯 평온한 표정을 짓고 ‘번영의 길’로 들어섰다. 전세계의 투자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며 ‘세계의 공장’, 세계 양대 강국(G2)으로 변신했다.

2010년 중국의 청춘이 다시 꿈틀거리고 있다.

대표적 수출지역인 광둥성 선전의 세계 최대 전자공장 폭스콘에서 노동자 12명의 자살이 이어진 것은 경고음이었다. 높이 10m 담장으로 둘러싸인 ‘폭스콘 제국’에서 42만명의 노동자가 하루 12시간씩 말 한마디 하지 못하도록 감시당하며 기계처럼 일했다. 젊은 노동자들은 “현실과 앞날에 대한 희망의 차이가 너무 크다”는 유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1970년 전태일이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것처럼.

광둥성 포산의 혼다자동차 부품공장에선 앳된 얼굴의 노동자 1900여명이 중국에서 유례가 없는 16일의 장기파업을 벌였고 자신들의 대표를 뽑아 협상을 계속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동종업계와의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했다. 노동자 통제에 주력해온 관변노조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자신들을 대표할 새 노조를 구성할 것을 주장했다.

주목받지는 못했지만, 5월 이후 파업 물결은 전국 곳곳으로 번지고 있다. 상하이의 샤프전자 공장, 장쑤성 우시의 니콘카메라 공장, 산둥 짜오좡 방직, 허난 핑딩산 방직공장, 윈난 훙허저우 13개 현 버스기사들의 파업, 후베이성 윈멍현의 택시기사 파업 등 대규모 파업이 벌어지고 있다. 한국 기업도 무풍지대가 아니다. 베이징현대차에 범퍼와 철제빔 등을 납품하는 성우하이텍 노동자 1000여명도 파업에 나섰다. 파견노동 형태로 베이징현대차 공장에서 근무하면서 원청업체 노동자와 비슷한 일을 하는데도 임금은 50~70%밖에 못 받자 임금인상을 요구했다.


중국에 진출한 한국기업 관계자는 “혼다 파업은 중국 외자기업이 이전처럼 쉽게 노사관계를 처리할 수 없게 된 변화를 상징하는 사건”이라며 “중국 노사관계의 새 물결이 시작된 게 확실하다”고 말했다. 다른 기업 관계자도 “올림픽을 전후해 노동운동이 고조된 1987년 한국과 비슷하다”며 “중국에서 파업 도미노도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늘의 현실은 1989년 천안문에서 해결 안 된 문제에 뿌리를 둔다. 당시도 자본주의화를 급격하게 추진하면서 산업은 호황을 맞았지만 빈곤층은 30%에 육박하는 인플레이션으로 고통을 겪으며 관료들의 부정부패에 분노했다. 천안문에 모인 변화의 요구를 무력으로 진압할 수는 있었지만, 덮어버린 문제는 21년 동안 더욱 깊고 넓게 곪았다. 불평등 수준을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0.47로 사회불안 위험수위인 0.4를 훌쩍 넘었고, 중국 지도부도 빈부격차 해소를 최대 과제로 강조하느라 바쁘다. 국영기업이 강하고 민영기업이 약해진다는 ‘국진민퇴’라는 용어가 국가는 부유해졌으나 민중의 삶은 퇴보한다는 의미로 유행하고 있다.

1989년 천안문의 청년들은 용감했으나 중국 사회의 뿌리인 농민들과 연대하지 못했고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했다. 2010년 작업복을 입은 농민의 아들딸들은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박민희 베이징 특파원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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