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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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관영 국제문제 전문지 <환구시보>는 9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방중과 한국 정부·언론의 중국 비난을 다룬 특집코너를 누리집(홈페이지)의 토론방에 마련했다. 큼지막하게 ‘한국식 원망, 중국식 냉정’이란 제목도 달았다. 촌철살인의 경지다. 지난 열흘 사이 중국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는 ‘조변석개’와 ‘좌충우돌’의 정수를 보여줬다. 4월30일 상하이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을 만난 이명박 대통령은 환하게 웃었다. 청와대는 “후 주석이 (천안함 침몰에 대한) 한국 정부의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조사를 평가했다”며 중국이 한국 편에 가까이 섰다고 암시했다. 사흘 뒤 한국 정부는 단단히 화가 났다. 김정일 위원장이 중국에 도착한 3일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가 “중국에 실망과 우려를 느낀다”고 비난하고, 4일 외교통상부가 주한 중국 대사를 이례적으로 초치해 항의하고, 5일 통일부 장관은 중국 대사에게 중국이 무책임하다는 식의 훈계를 하는 모습이 중국 언론에도 그대로 중계됐다.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이 6일 한국의 태도를 ‘주권 침해’로 비판하자, 한국 정부는 다시 놀라운 변신술을 선보였다. 7일 이명박 대통령은 “중국이 한국의 입장을 고려해 김 위원장의 방중을 며칠 늦췄다”고 했고, 청와대는 중국이 한국 대사에게 김 위원장 방중 소식을 가장 먼저 통보해 줬다고 홍보하기 바빴다. 현 정부는 한국의 경제적 사활이 걸린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입버릇처럼 외치면서도, 한-미 동맹 강화와 대북 강경정책에 열중하며 동아시아 신냉전 구조의 한 축을 맡았다. 중국이 한국의 수를 읽지 못했을 리 없다. 한국은 주도권을 쥔 듯 행동하지만, 신냉전 분위기 속에서 한반도에 대한 가장 큰 영향력을 쥐게 된 것은 중국이다. 천안함 침몰 이후 남북이 경쟁하듯 중국에 달려간 것은 그 사실을 상징한다. 중국은 의지할 곳 없게 된 북한에 경제적 지원과 투자를 약속하면서 북한 경제를 자국에 예속시키고 북한의 자원·항구·시장을 독점하는 실익을 확보하고 있다. 한-미 동맹축에 대항해 북-중 관계도 재확립했다. 방중한 김정일 위원장에게 중국 지도자들이 최고의 예우를 갖춘 것은 그를 그토록 흠모하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지난해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유엔 제재에 동참하면서 북한에 분노를 표했던 중국 지도부는 냉정한 전략적 계산 끝에 북한을 다시 포용했다. 중국이 제국을 다스리면서 주변 민족들을 복속시켜온 가장 강력한 무기는 ‘오랑캐’ 사이의 분열을 이용한 ‘이이제이’다.
한국 정부가 중국처럼 냉정하게 사고했는지 따져야 한다. 천안함의 비극을 북한이 저질렀다는 분명한 증거와 조사 결과가 나온다면, 이를 근거로 국제사회와 함께 책임을 묻는 단호한 조처를 취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증거도 결론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사실을 유포하며 북한과 중국을 비난하는 ‘한국 검찰식’ 외교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중국 등과의 협력 가능성을 줄여, 사건 해결을 어렵게 만들 뿐이다.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완전히 입증할 수 있는 사실이 발견되기 전까지 (남북) 양쪽은 차분히 자제하면서 말과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중국이 중요한 정책을 결정할 때는 역사학자가 참여한다고 한다. 많은 모순을 안고 있는 중국이 난국을 헤쳐가는 비결은 문제를 똑바로 보고 역사의 의미를 살피는 지도자들의 깊은 사고에서 나온다. 한국의 이번 대중국 외교전에서 역사에 대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선거를 앞둔 정치적 이익을 위해선 외교도, 민족의 미래도 알 바 아니라는 행보가 가져다준 손익계산서는 무엇인가. 박민희 특파원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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