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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03 21:37 수정 : 2010.05.04 10:52

권태호 특파원





이 주제는 피하고 싶었다. 다른 언론을 비판할 수 있고, 혹 <한겨레> 입장에 어긋나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결국 양비론으로 이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미국에서 본 ‘천안함 사태’의 일부분만 언급해 보자.

천안함 침몰을 놓고 보수·진보 모두 “봐라, 미국도 이렇게 보잖아”라는 식의 ‘미국은 우리 편’이라는 간절한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고 말았다. 보수의 바람은 ‘미국은 천안함 침몰에 북한이 연루됐다고 판단하며, 따라서 침몰 규명 전 6자회담은 없다’는 것이다.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지난달 14일 ‘6자회담 재개’ 물음에 “우선 천안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자”고 말한 게 단초가 됐다. 이는 “천안함 해결 전 6자회담 없다”는 조금 윤색된 번역으로 전해졌다.

캠벨 차관보는 지난달 27일 홍콩 콘퍼런스에서 ‘천안함 사건이 북한 소행으로 드러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회부하느냐’는 질문에 “사건을 조사중이며, 아직 공식 결론에 이르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28일 국무부는 브리핑에 앞서 “미국은 북한이 6자회담으로 복귀하길 원한다”고 명시했다.

침몰 초기부터 007 영화를 떠올리게 하는 ‘인간 수중어뢰설’ 등의 억측과 ‘아니면 말고’ 식으로 일관했던 보수진영에 비교할 바는 못 되지만, 진보 쪽도 사건 초기에 안쓰러울 정도로 ‘북한 소행 아님’을 항변하느라 애썼음을 부인하긴 어렵다.

특히 필립 크라울리 국무부 차관보가 침몰 직후인 지난 3월29일 브리핑에서 침몰 원인을 묻는 물음에 “배 자체(ship itself) 외 다른 요인이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를 갖고,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 “침몰 원인은 (외부 공격 아닌) 배 자체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건 안타깝다. 미국 정부 관계자의 말 한마디가 성경 말씀도 아니고, 브리핑 전후 맥락을 보면, 이 말은 ‘배가 침몰했다는 사실 외에 아직 아는 게 없다’는 뉘앙스로 보는 게 합리적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소식통은 미 행정부 내부 움직임에 대해 “애초 미국의 기본 입장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다. 그런데 천안함 사태로 6자회담 이야기를 꺼내기 힘든 분위기가 상당 기간 이어졌다. 그러다 국무부 안에서 ‘천안함이 북의 소행이든 아니든 어쨌든 6자회담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대두하면서 국무부가 ‘6자회담 복귀’ 공식 입장을 이 시기에 밝힌 것이다. 북한 소행으로 밝혀지더라도, 오히려 이를 빌미로 6자회담 복귀를 더 압박하자는 쪽으로 정리한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미국 방침이 이러하다면, 우리 정부로선 참 답답한 노릇임이 틀림없다. 6자회담이란 한마디로 ‘핵 포기하고, 대가로 경제지원’으로 요약된다. 그런데 천안함 침몰을 북한 소행으로 확신시킨 마당에 ‘북 지원’을 언급할 길은 스스로 끊어버렸다. 침몰 초기, 중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듯했던 청와대도 결국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이젠 말로만 “예단 않겠다”고 한다.


북한 소행임을 강조하고, 희생자들에게 영웅 칭호 붙여주고, 안보의식 고취하면 당장은 정부와 군의 무능을 숨길 수 있다. 문제는 ‘천안함 정국’에서 빠져나올 퇴로도 스스로 메워버렸다는 데 있다. 한국 안에서야 물증을 찾지 못해도 ‘북한 유죄’를 선고할 수 있겠지만, 그런 정황 증거를 국제무대에 내놓을 수도 없고, 임의로 타격할 수도 없다. 작전권은 내주자면서 “반드시 응징하겠다”는 모순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천안함 침몰에 대처하는 군을 보면서 전시작전권뿐 아니라 평시작전권도 내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마저 든다.

권태호 특파원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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