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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26 20:16 수정 : 2010.04.26 20:16

정남구 특파원





지난 18일 밤 일본 공영방송 <엔에이치케이>(NHK)는 한일합병 100주년 특집 5부작 ‘일본과 한반도’의 제1부 ‘합병으로 가는 길 -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 편을 방송했다. 방송이 끝난 뒤 이를 보도한 <한겨레> 기사에 대해 여러 얘기를 들었다. 일본의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대체로 “한겨레가 너무 점수를 짜게 매겼다”고 했다.

당시 내가 쓴 기사는 “제국주의 침략을 주변국의 뜻에 반해 큰 고통을 가한 일로 보는 인식의 대전환으로 나아가지 못한 것은 안타깝다”, “처음 방송을 준비할 때 <엔에이치케이>는 매우 의욕적이었으나, 결국 일본 내 우파의 반발을 크게 의식한 것 같다”는 신운용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책임연구원의 평가를 인용했다. 제목도 여기에 초점을 맞췄다.

<한겨레> 기사가 이 방송의 노력을 너무 사주지 않은 것이라 보는 시각은 이해할 만도 하다. 일본인에게 이토 히로부미가 누구인가. 일본 입헌정치의 기틀을 세운, 세계에 자랑할 만한 지도자가 아닌가. <엔에이치케이>는 그런 인물을 살해한 안중근을 이토와 같은 위치에 놓고, 안 의사가 그런 행동을 결의하게 이른 당시 상황을 최대한 있는 그대로 드러내려 애썼다. 일부 시청자가 ‘안중근에 치우친 방송’이라며 거세게 비난하는 것은 방송 내용이 일본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한 일본인 독자는 인터넷을 통해 한겨레 기사를 읽고 이런 항의 메일을 보내오기도 했다.

“이미 일본에서는 안중근을 단순한 테러리스트로 간주하고 있지 않습니다. 한국의 신문 보도를 보면 생각나는 것은 ‘왜 (역사인식의) 도랑을 메우는 것은 일본만의 몫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답을 보냈다.

“일본 쪽 노력이 진정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필요한 최저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조선침략, 조선합병은 결코 조선인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본과 일본인을 위한 것이었고 조선인에게 고통을 주었다’는 것을 먼저 인정하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는 이미 오래전 안중근 의사가 법정에서 했던, “조선이 언제 일본의 보호를 원했던가?”라는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일 뿐이다. 이토 히로부미가 ‘조선정벌론’을 배격하고, 합병을 망설였다고 해서 그것이 조선 사람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엔에이치케이>는 이토를 조선을 근대화하려는 선의를 가진 인물로 묘사했다. 이는 독립운동에 대한 모독이요, 살아있는 일제강점하 피해자들의 가슴을 후벼파는 일이 된다.

앞으로 4차례 더 방송될 <엔에이치케이>의 특집을 나는 기대한다. 그러나 ‘제국주의는 제국주의일 뿐, 착한 제국주의는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바꾸지는 않을 것이다. 한국과 일본은 하루빨리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러려면 일본이 먼저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를 해야 한다.

이런 주장을 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엔 불편함이 남는다. 과연 우리는 일본과 좋은 친구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고는 있는 것인가? <엔에이치케이>는 일본의 시청자들이 안중근의 처지에서도 사고할 수 있는 공간을 크게 열어줬다. 한국에서는 그런 노력을 찾아보기 어렵다. 어쩌면 우리는 도덕적 짐을 덜 지는 피해자의 처지를 내세워 일본에 요구만 할 뿐, 상대의 처지를 헤아리는 일은 회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과 일본 사이에 있는 바다를 우리가 ‘일본해’로 부를 수 없듯이, 일본 쪽에 ‘동해’로 부르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는 점을 헤아려야 비로소 미래가 열린다.

정남구 특파원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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