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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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수도 베이징에서 대지진이 일어난 칭하이성의 위수티베트족자치주까지는 2000㎞가 넘는 여정을 거쳐 ‘대륙횡단’을 해야 한다. 지난주 대지진 피해자들을 만나기 위해 위수까지 가는 동안,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초원과 황무지, 험준한 산을 넘으면서 중국 서부의 광활함에 약간은 기가 질렸다. 위수의 중심도시 제구진에 처음 들어섰을 때 폭격을 당한 것보다도 더 처참한 광경, 빈곤과 절망에 찌든 이재민들, 말도 통하지 않고 우리 문화와는 너무나 다른 티베트인들의 모습과 부딪치며, 이곳까지의 먼 여정만큼이나 멀고 먼 거리를 느꼈다. 기자가 티베트어를 하지 못하고, 주민 대부분이 중국어를 하지 못해 의사소통마저 어려운데 어떻게 이들의 삶을 이해할 것인가. 그러나 이재민촌에서 만난 주민들은 모든 것을 잃었지만, 오히려 기자에게 자신들이 몇시간씩 줄을 서서 어렵게 구호물자로 받은 물 한 병을 건네며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걱정했다. 무너진 학교 건물에 깔렸다가 구조된 소녀는 외부에서 찾아온 ‘불청객’ 기자를 위해 아무런 대가도 받지 않고 ‘가이드’가 돼 자신들의 삶을 이해하게 해주려 애썼다. 몇번 이야기를 나눈 개구쟁이들은 거리에서 기자를 알아보면 환하게 웃으면서 “아줌마”라고 부르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진행되는 구조활동을 초조하게 바라보던 아주머니들은 기자의 손을 붙잡고 손짓과 몇마디 중국어로 “저 안에 가족들이 있는데 아직 찾지 못하고 있다”며 계속 눈물을 훔쳤다. 그렇게 조금씩 이방인들끼리 마음이 열렸다. 그리고 조금씩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위수의 티베트 주민들 사이에도 빈부격차가 크다. 많은 주민들은 인근의 초원지역과 쓰촨의 간쯔, 티베트의 창두 등 더욱 빈곤한 지역에서 온 이들로, 이들은 위수에서도 가장 낡은 흙집에서 생활하다 이번 지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 17일 구호물자 배급소에서 만난 한 티베트 여인도 그런 사람이었다. 간신히 줄을 서서 받은 무거운 구호물자 두 상자를 끈 하나에 의지해 등에 메고, 어린 아들과 딸의 손을 붙잡고 가는 그를 따라나섰다. 그가 멈춘 곳은 이불 한 장조차 없는 빈터였다. 몇해 전 주변 초원지대에서 이주해 왔으나,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계속 구걸로 생활해 왔다고 한다. 이들에겐 신분증도 없다. 지진으로 살길은 더욱 막막해졌다. 그의 얼굴은 절망을 넘어 담담했다. 취재를 마치고 떠나기 전인 18일 새벽, 제구진의 거리를 정처없이 걸었다. 골목을 돌아설 때마다 나타나는 이재민촌들에선 살을 파고드는 무시무시한 추위와 싸우며 또 하룻밤을 지샌 주민들이 구호물자로 아침식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지진 이후 수만명씩 몰려든 구조대와 군대, 기자들은 곧 떠나고 떠들썩했던 거리는 곧 조용해지겠지만, 이들은 어떻게 삶을 이어갈까?
중국 정부는 민감한 소수민족 지역에서 일어난 이번 지진을 계기로 이 지역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막대한 구조인원과 물자를 지원하며 ‘민족단결’을 강조하고 있다. 이례적으로 국내외 언론들의 자유로운 취재도 지원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은 18일 이곳을 방문해 ‘새로운 집 재건’을 약속했다. 이런 약속들이 잊히지 않고 이곳 주민들에게 좀더 나은 내일을 가져다주길 진심으로 기대해 본다. 평지 사람들은 숨을 쉬기조차 힘들고 머리가 멍해지는 해발 4000m 이상의 고지대, 거센 바람의 풍화작용으로 황무지처럼 변한 산들, 장엄하면서도 혹독한 자연 속에서 오랫동안 전통과 문화, 역사를 지키며 살아온 티베트인들의 빈곤과 고통에 어설픈 동정 대신 같은 인간으로서 이해하고 싶은 큰 숙제를 마음에 안고 떠난다. 박민희 특파원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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