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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4.05 19:29 수정 : 2010.04.05 19:29

정남구 특파원





일본 정부가 나 같은 장기체류 외국인에게도 중학교 졸업 전 자녀 한 명에게 월 1만3000엔(약 15만원)씩 ‘어린이수당’을 주겠다고 한다. 고맙긴 한데, 일본의 나라살림을 생각하면 자꾸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어린이수당엔 자녀 양육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덜어줘 출산율을 높이자는 뜻이 담겨 있다. 물론 내가 만나본 일본의 젊은 부모 가운데 그 돈에 기대어 아이를 더 낳겠다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돈을 어디에 쓸지 행복한 고민을 하는 걸 보면, 소비는 확실히 늘어날 터이다. 빈곤층이 늘고 소득격차가 커지면서, 그것이 내수 부족을 낳고 디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일본 경제의 악순환을 끊는 데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런데 민주당이 공약한 대로 어린이수당을 내년에 월 2만6000엔으로 올리는 일은 쉽지 않아 보인다. 2조7000억엔에 이르는 추가재원 마련이 어려워서다. 일본 정부는 올해 나라살림을 꾸리기 위해 37조엔의 예상세수보다 많은 44조엔의 신규국채를 발행하기로 했다. 그나마도 6조엔을 여기저기 공공부문에서 끌어모아 국채 발행을 줄인 것이다. 내년에 공약을 마저 이행하려면 어디선가 지출을 대폭 줄이거나 세금을 늘려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애초 하토야마 정부도 올해 예산안에서 낭비적인 사업예산 9조엔을 삭감하겠다고 장담했지만, 실제 깎은 돈은 1조엔에 그쳤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 예산을 대폭 깎기란 어려웠을 게다. 세금 인상은 더욱 어렵다. 일본에서는 세율 3%짜리 소비세를 도입하는 데 10년이 걸렸고, 그 과정에서 세 명의 총리가 바뀌었다. 세금 인상은 정치권력에게 그야말로 저승사자다. 일본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소비세율 인상을 논의할 계획이지만, 간접세 인상은 내수를 살려 경제를 선순환으로 돌리자는 정책방향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런 점에서 공약 이행을 위해 하토야마 정부가 취할 선택은, 어렵지만 ‘콘크리트 예산’을 비롯한 낭비적 예산을 더 깎는 것뿐이다.

사실 일본의 나라살림이 아주 심각한 상태라는 건 몇 해 전부터 잘 알려진 일이다. 올해 연말 970조엔을 넘어설 일본의 나랏빚은 내년 말엔 1000조엔을 넘어서게 된다. 200%가 넘는 국가부채 비율은 최근 재정위기를 맞은 그리스(125%)조차 놀라 나자빠질 만한 수치다. 그럼에도 일본이 여전히 큰 탈 없이 지내는 비결은 국채의 95%를 내국인이 갖고 있다는 마지막 ‘안전장치’가 그나마 작동하고 있어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우리나라의 국가부채도 폭증하고 있다. 더 걱정스런 것은 외국인의 국채 보유도 함께 급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07년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채권을 거들떠보지 않던 외국인들이 지금은 국채와 통안채를 중심으로 60조원어치 넘게 보유하고 있다. 정부가 외국인 투자가에게 국채 이자소득세를 면제한 지난해부터 매수세에 불이 붙었다. 외국인의 채권 보유 비중이 아직은 전체 국채와 통안채의 7~9% 정도라지만, 안전장치는 빠르게 풀리고 있다.

외국인들의 태도가 언제 싹 바뀔지는 모른다. 이제 와서 외국인의 국채 투자를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나라살림을 더욱 건전하게 운용하는 길밖엔 없다. 일본의 실패는 길을 이미 가르쳐주었다. 비효율적인 공공사업을 하루라도 빨리 정리하라는 것이다. 효율성 검토조차 없는 ‘4대강 사업’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보다 ‘어린이수당’이 더 절실하게 필요한 곳이 우리나라다. 어린이수당을 우리나라에서 당당하게 받고 싶다.


정남구 특파원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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