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0.03.15 20:47 수정 : 2010.03.15 20:47

정남구 특파원





지난해 가을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내놓은 일본 민주당의 공약집을 다시 열어본다. 표지를 장식한, 앞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는 하토야마 대표의 다부진 얼굴이 매우 인상적이다. 공약집을 찬찬히 읽어보면 50년 넘게 장기집권해온 자민당을 궤멸시킨 그 힘이 결코 하늘에서 떨어진 게 아니라는 걸 새삼 확인할 수 있다. 민주당의 공약과 행동양식은 대담한 발상의 전환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들은 분명 ‘문제’를 숨김없이 드러냈고, 유권자의 마음을 흔들 만한 ‘비전’을 제시했다. 20년 넘게 침체를 이어가고 있는 일본에 다시금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그동안 감히 시도하지 않았던 일을 벌이겠다고 했다. 비록 마음 급한 유권자들이 실망하면서 하토야마 내각과 민주당에 대한 지지율은 급추락했지만, 그들의 도전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다.

민주당은 공약집에서 대외정책은 가볍게 다루고 있다. 미국과 ‘긴밀하고 대등한 관계’를 구축하고, 아시아 외교를 강화한다는 ‘외교’ 공약은 맨 끝에 실려 있다. 이런 공약은 ‘수출주도 경제’로서 일본 경제가 처한 한계를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해 돌파하겠다는 발상에 뿌리를 둔 것일 게다. 하지만 상대가 있는 일이고 누적된 과거가 짐이 되고 있는 만큼, 실현 속도가 빠르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도 놀라운 것은 민주당 공약의 핵심 가운데 핵심인 ‘어린이수당’ 도입과 ‘고교 무상화’ 정책이다. 국가부채 비율이 미국의 두 배를 넘는 나라에서 재원이 엄청나게 드는 이런 사업을 밀고 가겠다는 건 대단한 강심장이 아닐 수 없다. 두 정책을 실현하는 데 드는 돈은 올해 3조3000억엔, 한 사람당 월 2만6000엔씩 주는 어린이수당을 내년부터 전액 지급하면 한 해 무려 6조엔(72조원)이 든다.

하토야마 내각 출범 6개월이 되는 16일, 일본 의회는 어린이수당과 고교 무상화 정책 관련 법안을 마침내 의결한다. 이들 정책은 ‘보편복지’의 확대이며, 지금 일본이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재분배의 실현이다. 이는 성장이 멈추고 빈부격차가 커지는 과정에서 기력을 잃은 내수를 활성화하는 마중물로서 큰 도움을 줄 것이다. ‘콘크리트’에서 ‘사람’에게 재원을 옮긴다는 약속은 이 두 가지 정책으로 본격 돛을 올린다.

하지만 민주당의 그런 대범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 최근 벌어지고 있다. 하토야마 총리가 조선학교를 고교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할 뜻을 시사한 대목이다. 조선학교 문제는 나카이 히로시 납치문제담당상이 2월 말 제안하면서 갑작스레 부각됐다. 참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단독 과반수 획득이 어려워졌음이 분명해진 때였다. 하토야마 총리는 왜 나카이 장관의 제안을 곧바로 받아 안았을까? 일본인들이 싫어하는 ‘북한’을 두들겨 표를 모아보자는 발상에서 나왔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실제 이런 움직임이 선거에서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코 정당하지는 않다.

조선학교는 북한의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지만, 지금 학생의 절반가량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 해결 수단으로 이용할 대상이 아니다. 민주당의 고교 무상화 공약은 교육을 사회가 맡아야 할 과제로 끌어올린 것이다. 일본의 340만 고교생 가운데 2000명도 안 되는 조선학교 학생만 예외로 하겠다는 것인가.


일찍이 한 시대를 바꾼 일본의 큰 지도자들은 그런 옹졸한 수를 쓰지 않았다. 정권이 출범한 지 이제 겨우 6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해가 아직 중천에도 오르지 않았는데 무엇이 그리 급하실까.

정남구 특파원jeje@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기획연재|특파원 칼럼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