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2.01 20:28
수정 : 2010.02.01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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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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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초 도쿄특파원으로 부임하고 한달쯤 지났을 때의 일이다. 2월6일치 <아사히신문>에 ‘본사 기자에 의한 기사 도작 문제로 처분’이라는 제법 긴 기사가 실렸다.
<아사히신문>은 자체조사 결과 니가타총국 소속 사진기자(47)가 작성한 총 16건의 사진기사 중 3건이 다른 신문 기사를 베낀 것으로 밝혀져 당사자를 해고하고 감독 책임을 물어 도쿄 본사 편집국장과 편집국 사진부센터 매니저를 경질, 감봉처분했다고 보도했다. 애초 발단은 1월31일 문제의 사진기사를 본 한 인터넷 매체가 폭로한 데서 비롯됐다. 그러나 <아사히신문>은 내부 진상규명을 실시해 추가 도작 사실을 밝혀내고 편집국 고위 간부까지 연대책임을 묻는 등 자정노력을 보여주었다.
신문은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취재로 사실을 판단하고 자신의 말로 전달하는 기자의 일의 핵심 부분이 소홀히 다뤄지고 말았습니다. 있어서는 안 되는 사태가 일어난 것을 심각하게 반성하고 처벌을 하면서 인사관리를 포함해 책임을 명확히 했습니다.” 이 기사를 보면서 해마다 여론조사에서 일본 신문에 대한 국민 신뢰도가 85%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바로 내부 비리에 대한 스스로의 정화노력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3년 전 남의 나라 사건을 이제 와서 새삼 꺼내는 까닭은 <한국방송> 도쿄특파원을 지낸 전여옥 한나라당 의원이 최근 2심 소송사건 판결 이후 보인 일련의 태도를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기 때문이다.
서울고등법원 민사13부는 지난 1월13일 전 의원이 자신의 출세작인 <일본은 없다>에 대해 기자회견에서 표절 의혹을 제기한 재일 언론인 유재순(현 <제이피뉴스> 대표)씨 등 5명을 상대로 명예훼손 등 혐의로 모두 5억원의 피해보상을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원고가 피고 유재순의 취재내용, 소재 및 아이디어 등을 무단으로 사용하거나 이를 인용해 이 사건 책 속의 일부분을 작성했다고 봄이 상당하다”는 게 재판부의 판결이었다.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원고 도용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전 의원은 지난 25일 한국방송 라디오에 출연해 “법이라는 것이 너무 억울한 사람들을 많이 양산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많은 깨우침과 깨달음을 갖게 돼서 저 자신의 성장에 굉장히 도움이 됐다”고 사법부에 화살을 돌리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에 앞서 20일에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정치를 하는 것은 고난의 길인가 보다”라며 <맹자>의 글을 인용해 자신의 잇따른 패소를 ‘장차 큰 임무를 맡기려는 하늘의 뜻’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또한 전 의원 쪽이 공개한 상고이유서는 “대부분 언론들이 이번 사건의 청구 취지를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배상이 아닌 소위 ‘표절’ 의혹의 진위 여부를 다투는 것으로 몰아가는 것은 사실과 다른 명백한 오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언론의 보도태도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 소송의 핵심은 표절 여부의 진위가 아니라는 주장은 표적을 한참 벗어난 발언이다. 애초 표절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소송을 제기한 것은 전 의원 쪽 아닌가? 대법원 상고는 민사의 경우 법적용의 타당성을 묻는 재판이어서 1, 2심 판결이 뒤집히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어쩌면 전 의원이 끝까지 법적 시비를 가리겠다는 자세는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사법부의 최종판단으로 책임의 소재가 누구한테 있는지 명백해지기 때문이다. 그쪽이 한국 언론을 위해서도 좋은 판례를 남기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 의원은 특파원 시절의 취재를 바탕으로 <일본은 없다>를 썼다고 주장한 만큼 ‘있어서는 안 되는 사태’에 대한 결백을 입증해야 할 책임이 있다.
김도형 특파원
aip20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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