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10 20:20
수정 : 2009.09.14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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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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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국영방송 <중국중앙텔레비전>(시시티브이·CCTV)은 매일 아침 ‘자오원톈샤’(朝聞天下)라는 뉴스 프로그램을 내보낸다. 말 그대로 풀면 ‘아침 뉴스세상’쯤 된다. <시엔엔>(CNN), <비비시>(BBC) 등 세계의 주요 방송사들이 아침뉴스로 하루를 시작하는 만큼, 이 프로그램 역시 <시시티브이>의 선봉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이 최근 꽃단장을 했다. 칙칙하고 단조롭던 화면이 상큼하고 화려하게 바뀌었다. 뉴스 배경화면에 컴퓨터 그래픽이 등장하고, 앵커들이 앉는 자리도 뉴스룸처럼 꾸몄다. 단신을 묶어 전할 땐 영화처럼 배경음악까지 내보낸다. 단순한 리듬이 반복되는데 긴장감을 주면서도 경쾌하다.
화면 밑에 한 줄로 표시되던 자막은 두 줄로 늘어났다. 시간이 표시된 검은 줄에선 날씨와 단신이 흐르고, 날짜와 요일이 표시된 파란 줄에선 뉴스의 제목이 반짝인다. 시청자들이 한눈에 뉴스의 흐름을 이해할 수 있다. 일기예보를 전할 땐 해당 지역의 날씨가 화면에 대형 그래픽으로 표시된다.
이런 변화를 상징하는 게 여성 앵커 후뎨(26)다. 중국의 유명 배우 판빙빙을 닮은 외모 탓에 연예인 못잖은 인기를 누리는 그는 화사한 정장에 해사한 미소로 뉴스를 전한다. 근엄한 표정과 냉정한 말투로 뉴스를 전하는 다른 앵커와는 천양지차다. ‘미인계’로 시청자를 유혹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바뀐 것은 형식만이 아니다. 보도에서도 기자들의 리포트를 대폭 늘려 현장감을 살렸다. 중요한 사건이 터지면 실시간으로 전문가를 불러내 분석을 들려준다. 태풍이 푸젠성과 저장성에 상륙했을 땐 위성으로 현장을 연결하기도 했다. 다이어트 약과 성형수술의 부작용을 해부하는 잠입성 르포는 박력이 넘친다.
<시시티브이>의 변신은 ‘정부의 대변인’이라는 오랜 ‘명성’까지 벗어던지려 한다. <시시티브이>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뉴스 프로그램인 ‘신원롄보’(新聞聯播)는 얼마 전부터 최고 지도부의 연설이나 활동을 알리는 선전을 확 줄였다. 그 대신 평론 코너를 신설해 이른바 심층성을 강화했다. 환경오염이나 부정부패에 항의하는 주민들의 집단시위에 대해서도 과거처럼 모르쇠로 일관하지 않는다.
이런 변신을 두고 홍콩 언론들은 <시시티브이>의 관영매체 이미지 벗기가 본격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인터넷을 통해 조작되지 않은 여론이 유포되고, 그것이 관영매체의 정제된 보도를 압도해버리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승부수를 던졌다는 것이다. 방송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움직임과는 다른 방향이다.
그러나 <시시티브이>의 이런 혁신이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이라는 비판도 적지 않다. <시시티브이>는 최근 ‘위구르족의 달라이라마’로 불리는 레비야 카디르의 세 자녀가 어머니의 노선을 비판하는 인터뷰를 크게 내보냈다. 하지만 이들이 방송에 나가 자신을 비난하도록 강요당했다는 카디르의 반박은 전혀 다루지 않았다. 카디르의 자녀들이 자의로 <시시티브이>에 출연했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이들 가운데 한 사람이 현재 탈세 혐의로 구속중이라는 점은 이들의 출연 배경에 색안경을 끼게 한다. 중국에선 과거 문화대혁명 시절 반혁명분자로 찍힌 아버지나 어머니를 자녀가 관영매체에 등장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일이 적잖았다.
중국에선 최근 동사 앞에 ‘베이’(被)를 붙여 사회를 풍자하는 말이 유행하고 있다. 중국어에선 동사 앞에 ‘베이’를 붙이면 피동형이 되는데, 이를 이용해 정부에 대한 불신을 표시하는 것이다. 예컨대 정부가 경제가 ‘성장하고 있다’고 발표하면, 누리꾼들은 이를 ‘성장을 당했다’고 비꼰다. 이런 어법을 빌리면 <시시티브이>는 ‘개혁을 당했다’. 이명박 정부의 미디어 개혁과 같은 방향이다.
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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