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03 21:10
수정 : 2009.09.14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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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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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특파원 발령을 받고 기사 쓰는 것 외에 가장 먼저 걱정됐던 건 의료보험이었다. 건강가족이라 자부했지만, ‘감기 10만원, 맹장염 1000만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미국 의료비 소문을 익히 들어온 터다. 그런데 미국 의료보험에 가입하려 하니, ‘4인 가족, 월 900달러’다. 한 달에 100만원이 넘는다.
망설였다. 무보험으로 버텨도 매달 100만원을 의료비로 쓸 턱이 있냐는 생각이 앞섰다. 그 돈으로 맛난 것 먹고, 피트니스센터 다니고, 비타민 복용하는 게 더 낫겠다는 판단도 했다.
그런데 미국 생활 경험자들은 “그래도 가입해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아이가 있거나, 가볍게라도 병원 신세를 진 사람들은 더했다. 온갖 무용담도 쏟아졌다. 한국에선 무료인 혈압체크가 100달러, 한국에선 2만~3만원인 혈액검사가 500~600달러, 구급차 부르면 500달러, 수술·입원에 10만달러, 급기야 암 초기 진단 받고도 의료비 때문에 망설이다 진료 시기를 놓쳐 숨졌다는 슬픈 사연까지.
궁금했다. 세계 최고 선진국인 미국 의료체계가 왜 이 모양인지. 미국 의료비가 비싼 이유는 복합적이다. 미국에선 약값이 비싸다. 카피(복제)약을 못 쓰고, 제약사들의 끊임없는 신약개발 비용이 약값에 녹아 있다. 여기에 소송의 나라인지라 의료과실 소송이 빈번하다. 그래서 의사들은 의료과실을 막느라 알레르기 체크부터 온갖 검사를 다 한다. 이는 보험료로 전가된다. 물론 가장 큰 원인은 보험회사의 폭리다.
지난해 미국 직장보험 가입자의 가족 기준 의료보험료는 연평균 1만2680달러였다. 1999년에는 5791달러였으니, 9년 만에 119%가 올랐다. 높은 의료보험료는 기업들도 어렵게 한다. 지엠(GM) 파산이 ‘강성 노조’ 때문이라지만, 실상을 보면 그 ‘강성 노조’가 주로 요구한 건 의료보험료였다. 그리고 지엠은 파산했다. 미국인의 16%는 의료보험 미가입자다. 실업률이 10%에 육박하면서 현재 매일 1만4000명의 미국인이 의료보험 자격을 잃는다. 지역의보 시스템이 받쳐주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 실업이란 생명을 위협받는 상황인 셈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최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료보험 개혁안에 대한 지지세가 왜 점점 약해지는지. <워싱턴 포스트>와 <에이비시>(ABC)의 지난달 여론조사를 보면, 오바마 의료개혁안 지지율은 49%다. 지난 4월의 57%에 견줘 계속 낮아지고 있다. 반대는 4월의 29%에서 44%로 올랐다. 오바마 개혁안의 가장 큰 관심은 무보험 가입자들의 공공보험 보장이다. 10년간 의료개혁에 들어가는 돈은 9500억달러. 이를 위해 오바마는 먼저 ‘부유층 누진세’를 거론했다. ‘종부세 논란’에서 보았듯 ‘증세’가 거론되면, 세금 안 내는 중산층도 돌아서기 쉽다. 오바마가 “중산층 증세 아니다”라고 아무리 외쳐도 마찬가지다. 불났다고 물 퍼부으라던 사람들이 물값 아깝다고 수도꼭지 틀어잠그는 꼴이다.
여기에 오바마는 노인 의료보험 메디케어와 빈민 의료보조 제도 메디케이드에 칼을 대 3000억달러를 조달하겠다 했다. 부자는 물론 중산층, 저소득층, 어디 하나 확실한 원군을 찾기 힘든 지형이다. 보험료를 대폭 낮춰준다면 좋으련만, 보험료 인하는 재정을 퍼부은 다음 일이다.
내 문제로 돌아와 보자. 미국에서 보험 없이 20일 정도 살았다. 아침에 몸이 조금만 찌뿌드드해도 겁부터 난다. 아이 얼굴에 아토피 발진이 돋아도, ‘병원에 가, 말아? 하룻밤만 더’라고 한다. 원체 소심한 성격 탓인지 막연한 불안이 맴돈다. 매달 900달러는 ‘불안 보험료’인 셈인가?
권태호 특파원
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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