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28 21:38
수정 : 2009.09.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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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강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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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마르크스주의의 지도적 지위를 유지해야 하는가?”
“마르크스주의는 우리 역사와 인민의 선택이다. 마르크스주의가 없었다면 중국도 없었다. 서방의 적대세력은 지금도 끊임없이 중국의 서구화와 분열을 획책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를 포기하는 것은 스스로 만리장성을 허무는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 공산당 중앙선전부가 최근 펴낸 소책자의 한 대목이다. 중국이 이른바 ‘사상의 다원화’를 허용할 수 없는 이유를 교리문답식으로 명쾌하게 설명한다.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까맣게 잊혀져가고 있는 마르크스주의를 서방의 음모에 맞서 중국을 지키는 만리장성에 비유한 게 흥미롭다.
‘여섯 가지 왜’라는 제목의 이 책자는 요즘 중국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베스트셀러’다. 중앙선전부가 지난달 30일 각급 당조직에 이 책자를 연구토론하도록 지시한 이래 전국 각지에서 대대적인 학습 열풍이 일고 있다.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은 이 책자의 내용을 해설하는 특집물까지 내보냈다.
이 책자가 자문하는 두 번째 질문은 “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발전시킬 수 있는가?”이다. “이는 고도로 집중된 계획경제를 활력이 넘치는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변모시켰다. 이로써 13억 인민은 편안한 삶을 누리게 됐다”는 답변이 이어진다. 중국은 자본주의를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나머지 문답도 이런 식이다. “왜 인민대표대회 제도를 유지해야 하는가?” 삼권분립이나 양원제는 불필요하다. “왜 공산당의 영도를 유지해야 하는가?” 다당제는 서방의 제도다. “우리는 왜 공유제를 핵심으로 유지해야 하는가?” 사유화는 사회주의가 아니다. “왜 개혁개방을 흔들림 없이 추진해야 하는가?”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처럼 간단명쾌한 교리문답은 1950년대 반우파투쟁이나 60~70년대 문화대혁명 때 펼쳐졌던 사상투쟁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로 <중국중앙텔레비전>은 해설에서 ‘여섯 가지 왜’는 사회주의의 핵심 가치체계 건설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설명한다. “중국의 개혁발전이 역사적 기점에 서 있는 상황에서 근본 문제에 대한 통일적 사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여섯 가지 왜’가 서방의 민주주의를 적으로 삼은 것도 흥미롭다. 삼권분립이나 양원제, 다당제 같은 서방의 상투적인 제도를 중국에 대입할 순 없다며, 꼭 ‘절대불가’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인민일보>는 해설에서 “민주주의는 서방의 전유물이 아니다”라며 “비서방 국가들도 자기만의 독특한 민주주의의 길을 탐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섯 가지 왜’는 역설적으로 중국 공산당의 위기의식을 보여준다. 중국에선 최근 자유주의적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전면적인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12월엔 300여명의 지식인이 공산당 일당독재 종식과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를 요구하는 이른바 ‘08헌장’을 발표했다. ‘여섯 가지 이유’는 이런 불온한 움직임에 대한 공산당의 반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여섯 가지 왜’가 대중의 완벽한 지지를 끌어내기에는 힘이 달려 보인다. 일각에선 이제 와서 마르크스 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이냐며 코웃음을 친다. 대학생이 해야 할 답변을 초등학생이 하고 있다는 비아냥도 들린다. 중국 공산당이 드디어 만병통치약을 개발했다고 조롱하는 이들도 있다.
인터넷에선 ‘여섯 가지 왜’를 패러디한 풍자도 돈다. “왜 백성들은 항상 궁핍한가? 왜 관리들은 모두 부자인가? 왜 부패가 이리도 극성을 부리는가? 왜 먹거리를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가? 왜 약값이 이처럼 비싼가? 왜 집값은 여전히 비싼가?” 먼 이념보다는 가까운 현실을 직시하라는 독설이다.
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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