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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21 21:46 수정 : 2009.09.14 15:51

류재훈 특파원

부시 전 행정부의 마지막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인 로버트 조지프 군축·비확산 담당 차관이 2006년말 9·19 공동성명에서 합의한 경수로 제공 논의를 두고 “돼지가 날기 전까진 어림없다!”고 한 적이 있다. 하지만 나는 2007년 새해 벽두에 ‘돼지가 나는 날이 올까?’라는 칼럼을 쓰면서,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희망을 적었다. 이후 진전상황은 돼지가 날 수도 있다는 한 가닥 희망을 이어가게 했다.

돼지를 많이 키우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는 도시의 상징이 ‘나는 돼지’이고, 매년 5월 ‘플라잉 피그(나는 돼지) 마라톤대회’를 성황리에 열고 있다. 올해 초 버락 오바마가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되면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새역사를 썼기에 다시 한번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돼지는 날기 힘들다’는 고정관념을 깨기는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한 지 6개월째로 접어들면서 북핵문제는 더욱 꼬여가고 있다.

지난 16일 한-미 정상회담은 대북제재와 긴장고조의 국면을 선언했다. 두 정상은 북핵에 맞서 핵우산을 포함한 확장된 억지력을 공식문서화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도발에 대한 보상으로 이어지는 과거 북한과의 협상 패턴을 거부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공조를 밝힘으로써 전쟁에 미련이 있는 북한이 (전쟁을) 실행에 옮기지는 못할 것” 등의 강경발언을 쏟아냈다. 북한을 뺀 5자회담으로 북한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북한의 반발과 추가도발을 부추기는 것이다.

대북 압박을 위한 5자회담은 부시 행정부 시절 네오콘들의 주장이었으나, 중국의 반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중국은 추가 대북 결의안에 합의했지만, 실행을 위한 협조에 대해선 확실한 답을 한 적이 없다. 5자 공조를 전제로 한 대북 압박은, 과거의 역사를 본다면 신기루다.

북한 같은 적성국가들과 직접대화와 정상회담까지 할 뜻을 밝혔던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대화론은 이제 비확산 원칙론으로 바뀌었다. 대북정책 재검토가 끝나기도 전에 오바마 정부의 대북 대응이 엄격해지면서 스스로 되돌리기 어려운 지경으로 흐르고 있다. 오바마 정부는 대화의 창을 부인하지 않고, 외교를 강조한다. 그러나 그 외교는 북한과의 대화가 아니라 북한의 행동에 즉자적으로 반응하기 위해 중·러의 협조를 얻어 북한을 압박하는 데 모아지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의 대북 인식은 부시 대통령의 그것을 닮아가고 있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도 그토록 비판했던 북-미 직접대화 이전의 부시 행정부의 정책을 방불케 한다.

취임 초기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의 도발적 행동을 새 정부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북한의 핵실험을 전후해서는 지도체제 승계를 둘러싼 북한 내부의 필요에 따른 것이라는 판단으로 바뀌었다. 북한이 내부 체제 정비가 끝날 때까지 대화 테이블에 나오지 않을 것이고,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확산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힘을 얻고 있다. 이런 가운데 억류된 두 미국 여기자의 석방 교섭도 북핵 문제와 별개의 사안이라며 뒤로 밀렸다.

한반도 비핵화를 유훈으로 남긴 김일성 주석의 100주년 생일을 맞는 2012년, 북한이 강성대국의 상징으로 핵탄두를 탑재한 대포동 미사일을 내보이며 군사퍼레이드를 하는 것은 정말 보고 싶지 않다. 맞대응의 결과는 파국이다. 그리고 공멸이다. 오바마 정부는 파국을 막기 위해 직접대화에 나서겠다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류재훈 특파원hooni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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