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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5.17 21:05 수정 : 2009.09.14 15:44

유강문/베이징 특파원

베이징에서

중국과 대만은 1978년까지 바다를 사이에 두고 포탄을 주고받았다. 중국이 푸젠성에서 쏘면, 대만은 진먼섬에서 반격했다. 1958년 8월23일 중국의 도발로 시작된 이 ‘진먼 포격전’은 중국이 그해 10월28일 격일제 공격으로 전환하면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지만, 포성이 최종적으로 멎은 것은 1979년 1월1일 중국과 미국이 국교를 맺고 나서였다.

푸젠성은 당시 ‘대만 해방’을 위한 중국의 전초기지였다. 중국은 진먼섬과 불과 27㎞ 떨어진 샤먼에 진지를 구축하고 진먼섬을 향해 포탄을 퍼부었다. 개전 초기 2개월 동안 무려 47만발이 150㎢ 크기의 진먼섬에 떨어졌다. 인류의 전쟁사에서 유례없는 착탄밀도였다. 이때 떨어진 포탄피를 재활용해 만든 칼은 한때 진먼섬의 특산품이었다.

그랬던 푸젠성이 지금 중국과 대만의 통합을 상징하는 대규모 경제특구로 변신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 4일 푸젠성을 대만과의 교류·협력을 강화하기 위한 ‘해협서안 경제구’로 건설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푸젠성을 선전의 주장삼각주, 상하이의 창장삼각주, 톈진의 보하이만 경제권의 뒤를 잇는 새로운 성장축으로 개발하겠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의 의지는 나흘 뒤인 8일 원자바오 총리가 샤먼의 대만 기업들을 전격 방문하면서 재확인된다. 원 총리는 천훙과학과 샤화전자 등 샤먼에 진출한 대만 기업들을 둘러보고, 중국과 대만의 평화적 발전과 협력을 거듭 강조했다. 대만 기업인들을 격려하는 그의 표정에선 30년 전 진먼섬을 향해 날아갔던 ‘포탄의 살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푸젠성은 사실 대만인들에겐 고향 같은 곳이다. 대만인의 80%가 푸젠성 출신이라는 통계까지 있을 정도다. 푸젠성에선 지금도 대만어와 뿌리가 같은 방언을 쓰는 이가 중국의 표준어를 쓰는 이보다 많다. 대만의 100대 기업 가운데 40여곳이 푸젠성에 자본을 투자했다. 1981년 대만 기업이 처음 진출한 샤먼엔 현재 3300여개의 대만표 공장이 돌고 있다.

푸젠성은 이런 조건을 활용하기 위해 2004년부터 푸젠성과 대만을 하나의 경제권으로 묶는 발전 전략을 모색해왔다. 그러나 천수이볜 당시 대만 총통의 독립노선과 중국 정부의 봉쇄정책이 충돌하면서 이 담대한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다. 중국과 대만 사이에 놓인 이런 정치적 장애물은 지난해 5월 마잉주 총통이 취임하면서 극적으로 사라진다.

사실 중국의 푸젠성 구상은 남북의 개성공단 전략과 별반 다르지 않다. 2000년 8월 현대아산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합의로 추진되기 시작한 개성공단 역시 남쪽의 자본과 북쪽의 노동력을 결합해 남북의 경제통합을 앞당긴다는 원대한 포부를 품었다. 이를 통해 개성을 중국의 선전이나 푸둥에 버금가는 역동적인 도시로 개발한다는 청사진을 그렸다.

그러나 지금 푸젠성과 개성공단의 모습은 천양지차다.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가 악화하면서 개성공단은 활력을 잃어가고 있다. 개성공단이 정치게임의 볼모로 전락했다는 탄식도 들린다. 북한 체제를 비난했다는 이유로 억류된 현대아산 직원은 아직 면담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개성공단 입주조건을 재협상하기 위한 2차 남북접촉도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중국은 푸젠성을 광둥성과 홍콩, 대만까지를 아우르는 ‘초광역 경제특구’로 발전시킬 계획이다. 이들을 하나로 묶어 미국의 보스턴~뉴욕~워싱턴과 필적할 수 있는 ‘슈퍼 경제권’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중국과 대만의 경제통합을 넘어서는 야심찬 구상이다. 개성공단이 처음에 꿈꿨던 미래가 지금 중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유강문 특파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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