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16 11:47
수정 : 2010.12.1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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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카’ 기술 미리 알아본 노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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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올해 노벨상은 유난히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가 중국 정부의 탄압으로 시상식에 불참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그가 노벨상 수상식에 못 가도록 여러 나라에 압력을 행사했다. 힘이 있다고 마구 휘두르면 불량배와 다름없다. 전혀 주목받지 못했던 200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의 이름을 되새겨 보자. 윌러드 보일과 조지 스미스, 40년 전 고체촬상소자(전하결합소자·CCD)를 개발한 주인공이다. 1969년 10월 미국 벨연구소 반도체 분야 연구책임자였던 윌러드 보일과 연구원 조지 스미스는 빛을 전기신호로 바꿀 수 있는 시시디를 개발해 동료들 앞에서 시연했다. 아마 그들도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이 미래에 얼마나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끼칠지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시력을 잃은 사람에게 ‘전자눈’을 시술하는 것도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지난달 뉴욕주립대 사진학과 와파 빌랄 교수는 자신의 머리(정확하게 위치를 말하자면 뒤통수)에 카메라를 ‘이식’했다. 머리 두피를 절개해 티타늄 거치대를 달고 거기에 조그만 카메라를 장착했다. 머리 뒤에 눈을 단 최초의 인간이 된 셈이다. 물론 그의 뒤통수에 달린 ‘눈’은 시신경으로 직접 연결되진 않는다. 하지만 실시간 영상 전송장치를 통해 와파 빌랄 교수가 ‘제3의 눈’으로 보는 영상은 15일부터 웹사이트(www.3rdi.com)에서 생중계된다. ‘제3의 나’(The 3rd I)라고 이름 붙은 그의 엉뚱하고 기발한 퍼포먼스는 1년 동안 계속된다. 예술가의 넘치는 창작 욕구는 뒤통수가 불편한 것쯤으로는 꺾을 수 없는 모양이다. 하여간 그가 이런 퍼포먼스를 기획하고 실천에 옮길 수 있게 된 것도 모두 고성능 시시디와 소형화되고 있는 디지털카메라 덕분이다.
아마 21세기가 끝나기 전 애니메이션 <요코하마 매물기행>(국내에는 원작이 <카페 알파>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의 안드로이드 주인공처럼 이미지 데이터를 몸 안의 저장 장치에 담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거나, ‘600만불의 사나이’처럼 줌 기능을 가진 시신경에 직접 연결된 전자눈을 구입해 장착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 모든 것은 몇 년 앞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10년 내에 손에 잡히는 현실로 다가올 수도 있겠다.
그런데 카메라, 캠코더, 컴퓨터, 휴대전화 등 온갖 전자기기에 사용되는 윌러드 보일과 조지 스미스가 개발한 시시디 기술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본 곳은 어딜까. 바로 일본의 소니였다. 1969년 시연 이후 2년 뒤 조지 스미스는 세계 최초의 흑백 시시디를 개발하고 소니는 벨연구소에서 시시디 기술을 이전받는다. 검증되지 않은 신기술에 대한 소니의 과감한 투자는 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빛을 볼 수 있었다. 1978년이 되어서야 상품으로 쓸 수 있는 시시디 개발에 성공했고 1981년 세계 최초의 상용 디지털카메라 마비카(Mavica)를 선보였다. 마비카의 등장은 그야말로 개벽이었다. 캐논, 니콘 등 메이저 카메라 회사가 뒤늦게 시시디를 장착한 디지털카메라의 ‘상품성’을 알아차렸지만 오랜 세월 축적한 소니의 시시디 제작 기술을 쉽게 따라잡긴 힘들었다.
선견지명 덕분에 오랜 세월 소니는 시시디 공급자로 독점적 지위를 누렸다. 디지털카메라뿐 아니라 시시디가 들어가는 영상 장비는 소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지금도 많은 카메라 회사들이 소니의 시시디를 가져다 쓰고 있다. 소니는 캐논, 니콘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미놀타를 인수한 뒤 단숨에 카메라 업계의 강자로 떠올랐다. 기업의 맷집이 강하려면 역시 기술력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글 조경국 카메라칼럼니스트·사진 출처 sonyins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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