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12.02 14:45
수정 : 2010.12.02 14: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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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카메라 향수 자극한 X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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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서툰 목수가 연장을 탓하는 법, 진정한 고수는 연장을 가리지 않는다”는 옛말을 철석같이 믿는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성능 좋은 카메라가 꼭 좋은 사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어떤 카메라를 사용하든 사진가의 안목과 내공이 사진 수준을 결정하는 법이다. 초보 시절에는 값 비싸고 폼 나는 카메라로 촬영하면 덩달아 사진 실력도 높아지는 줄 알았다. 카메라에 대한 욕심과 사진 실력은 따로 논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카메라 욕심이 강해질수록 오히려 사진은 뒷전이었다. 사진보다 ‘카메라’라는 물성 그 자체의 매력에 빠져버렸다고 할까. 손님이 안방을 차지하고 누운 꼴이다. 꽤 많은 카메라가 필자의 손을 거쳐갔고, 사진 실력보다 카메라 보는 안목만 높아졌다.(덕분에 이 글을 쓰고 있긴 하다.) 이제는 ‘지름신’에 현혹되지 않고 바꿈질의 수렁쯤은 쉽게 피해갈 수 있을 정도의 내공을 쌓았다. 값나가는 카메라는 내다팔고 대신 저렴한 카메라로 바꿔 꽤 오랜 기간 ‘다운그레이드’ 생활을 즐겼다. “사진은 카메라가 아닌 사진가의 마음으로 찍는 것이다”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말이다. 그런데 최면을 깨는 카메라가 등장할 줄이야.
파노라마 카메라 TX 시리즈, 즉석카메라 인스탁스 미니, 폴딩형 중형 필름카메라 GF670 등. 이 3가지 모델만 놓고 보더라도 후지필름의 행보는 다른 필름 제조회사나 카메라 회사와는 면모가 다르다. 어느 때는 한발 앞서가다가 아예 시대의 흐름을 무시하는 제품을 내놓기도 한다. 하셀블라드와 함께 출시했던 TX 시리즈(하셀블라드는 X-PAN이라는 이름으로 나왔다)는 파노라마 형식에 목말라 있던 사진가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틈새시장을 제대로 파악한 카메라였다. 폴라로이드(미국의 광학기기 제조회사)가 즉석카메라와 즉석필름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지만 오히려 후지필름은 인스탁스 미니에 공을 들였다. 폴라로이드는 역사의 뒤편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인스탁스 미니는 지난 10년 동안 100만대가 넘게 팔리는 상품으로 자리잡았다. 캐논, 니콘 등 모든 메이저 카메라회사들이 필름카메라 생산을 중지하고 더 뛰어난 디에스엘아르(DSLR) 카메라 개발에 집중하는 동안 후지필름은 ‘포이크틀렌더’(일본 카메라회사)와 손잡고 복고 노선을 걸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GF670. 디지털카메라가 완전히 자리잡은 2009년, 중형 필름을 사용하고 20세기 초기 주름상자가 있는 폴딩형 카메라를 재현한 GF670의 등장은 그야말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지난 9월 독일 쾰른에서 열린 세계 최대 사진 기자재전인 포토키나(Photokina)에서 후지필름은 GF670에 이어 또하나의 ‘복고풍 카메라’ 시제품을 공개했다. 라이카 M과 후지필름의 콤팩트 카메라 클라세의 디자인을 섞어놓은 듯한 디지털카메라 X100(사진)이 주인공. 아날로그 시대에 대한 오마주가 느껴지는 X100은 출시 예정일조차 아직 발표되지 않았는데도 이미 카메라 애호가들 사이에는 입소문이 퍼졌다. 호불호가 있겠지만 아직도 필름카메라의 향수를 잊지 못하는 사진가들에게는 확실하게 매력적이다. 둥글둥글한 다이얼, 질긴 검은 가죽으로 감싼 무광 크롬 몸체, 완벽하게 레인지파인더 필름카메라의 외형과 느낌을 살려놓은 X100 디자인은 독자노선을 걷는 후지필름만의 남다른 감성에서 나온 결과물이다. X100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는 동안 큰 즐거움에 빠져서 지름신에 휘둘리고 말았다. 그동안 용맹정진 면벽수행하며 쌓았던 공덕(?)이 한순간에 무너졌다. 아~ 나약한 나의 마음이여.
글 조경국 카메라 칼럼니스트·사진출처 www.fujifil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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