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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10.21 17:30 수정 : 2010.10.21 17:30

리팩스35

[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고등학교 시절 자전거 페달을 숨이 넘어갈 정도로 열심히 밟아 필름 봉투를 역까지 배달했던 적이 있다. 지방일간지 기자를 하셨던 아버지의 심부름이었다. 마감 시간을 다투는 기사일 경우 현상도 하지 않은 필름을 부산행 열차편으로 본사에 보내고 기사는 전화로 불러주는 식이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과거(?)의 일이다. 1990년대 초에는 그랬다. 필름스캐너가 대중화되기 전까지만 해도 필름을 등기우편으로 보내거나 버스나 열차편을 이용해 전달했다. 인터넷만 연결하면 세계 어디서든 촬영 즉시 사진을 보낼 수 있는 현재로선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우리나라 안에서 일어난 일이야 이렇게 ‘직접 배달’이 가능하지만 나라 밖 소식을 담은 사진은 어떻게 주고받았을까?

“한국 언론이 (사진) 송수신기를 완전히 갖춘 것은 1983년이 되어서였다. <중앙일보>, <경향신문>에 이어 <조선일보>가 <에이피(AP)통신>을 통해 발주했다. 그 당시만 해도 이 전송기를 구입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왜냐하면 (에이피통신사가) 제한생산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략) 그러나 수신 상태가 무척 좋지 않아 한 장을 수신하려면 몇 시간이 소요되기도 했다. 게다가 고장이 잦아 그 당시 사진부 기자들은 무척 고생했었다.”

1993년 출간된 <역사와 함께 발육하는 보도사진>(새소년, 김성배 지음)에 나오는 내용이다. 1983년 이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국내 언론사들은 <에이피통신>, <연합통신>, <합동통신>을 통해 국외 보도사진을 받아 썼다. 당시 국내 언론사가 사진 전송기를 갖추려고 한 이유는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때문이었다. 전송기를 갖추는 일은 4년 후 열릴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경쟁사와의 속보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한 대비이기도 했다. 1980년대에 스포츠 일간지가 마구 창간된 이유이기도 하다.

니콘이나 캐논 등 메이저 카메라회사들은 올림픽이 열리는 시기에 맞춰 최신 기술이 집약된 신제품을 내놓았다. 언론사들도 거기에 발맞춰 사진장비를 업그레이드했다. 1980년대에는 <에이피통신>이 개발한 리팩스(LEAFAX), 니콘 NT 시리즈, 하셀블라드 딕셀(DIXEL)이 전송기의 대표 주자였다. 이 전송기들은 필름만 현상하면 스캔과 전송 작업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전 전송기는 필름 상태로는 스캔을 할 수 없고 인화된 사진이 있어야만 가능했다. 외국 취재를 나가야 할 경우 확대기, 현상·인화 약품을 모두 가져가야 했다. 리팩스, NT, 딕셀의 무게는 모두 10㎏이 넘었지만 확대기까지 챙겨 가는 것에 비하랴. 리팩스나 NT, 딕셀의 등장은 해외 취재나 시간을 다투는 사진기자에겐 그야말로 개벽이었다. 하지만 아날로그와 디지털 시대의 징검다리 구실을 한 전송기의 시대는 길지 않았다. 디지털카메라와 인터넷의 발달로 곧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마지막으로 <역사와 함께 발육하는 보도사진>에 나오는 리팩스35(사진)의 사용 설명서 첫 문장을 옮긴다. 당시 사진기자는 가슴속에 ‘참을 인’ 자를 새기며 취재를 했을 듯싶다.

‘1) 코드를 정확하게 연결하고 전압을 꼭 확인(100V/220V)

한 다음 스위치를 켠다.(약 20분간 예열이 필요함)’(헉! 20분간 예열이라니!)


글 조경국 카메라칼럼니스트<30FB>사진 제공 www.deligen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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