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9.01 20:36
수정 : 2010.09.01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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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련한 핀홀 사진기 만들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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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새로운 디지털카메라가 나올 때마다 엄청난 성능에 놀란다. 에이치디(HD) 동영상 촬영은 기본이고 초점까지 잘 맞춰준다. 사람의 미소를 감지해 자동으로 셔터를 눌러주기도 한다. 손떨림 방지 기능은 기본이다. 다양한 상황에 맞게 자동으로 촬영모드가 바뀌어 사용자가 복잡한 조작을 할 필요가 없다. 이런 ‘똑똑한’ 디지털카메라가 하루가 멀다 하고 나온다. 필름 레버를 돌리고, 셔터속도와 조리개값을 고민하고, 초점을 맞추고 마지막으로 숨을 고르며 셔터를 누르던 수동 필름카메라의 손맛을 느끼기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가끔 상자 속에서 잠자고 있는 필름카메라를 꺼내 ‘공셔터’(필름을 넣지 않고 셔터를 누르는)를 날리는 것으로 향수를 달랜다. “카메라와 사람이 교감하던 시대는 갔다”고 자조하며 말이다.
“핀홀카메라(바늘구멍 사진기)로 찍은 사진을 구할 수 없을까요?” 후배의 부탁을 받고 끙끙댄 적이 있다. 핀홀카메라는 기원전 4세기 아리스토텔레스가 발견한 카메라 오브스쿠라(한쪽 면에 작은 구멍이 있는 어두운 방)를 그대로 구현한다. 내부를 검게 칠하고 빛을 완벽하게 차단한 상자에 작은 바늘구멍을 뚫고는 그 반대쪽에 필름이나 감광지를 붙이면 핀홀카메라가 완성된다. 원리는 간단하지만 실제로 핀홀카메라를 만들려면 상당한 공을 들여야 한다. 간단한 방법은 렌즈교환식 카메라(DSLR도 가능하다)에서 렌즈를 떼고 대신 바늘로 구멍을 뚫은 골판지를 붙이고 촬영하면 된다. 이때 골판지는 검은색이 좋고 바늘구멍은 정중앙에 위치해야 효과 만점이다. 카메라 내부에 이물질이 들어가지 않도록 막아주는 바디캡이 있다면 바디캡에 바늘구멍을 뚫는 방법도 있다. 평상시에는 렌즈를 사용하다 핀홀카메라 사진을 찍고 싶다면 바디캡으로 바꿔 끼우면 되니 편리하다. 하지만 불에 달군 바늘로 바디캡에 깨끗하게 구멍을 내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여러 차례 도전을 했지만 이래저래 고민만 많아지고 쓸만한 핀홀카메라 사진을 얻지 못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세상엔 항상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그것을 쓸만한 물건으로 만들어내는 재주 좋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핀홀 바디캡’이라는 제품이 있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핀홀아트(PinHoleArt)에서 만든 핀홀 바디캡은 렌즈교환식 카메라로 핀홀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사진가들을 위한 아이디어 상품이다. 0.25㎜ 구멍이 뚫려 있는 핀홀 바디캡을 카메라에 장착하고 촬영한 사진들은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지만 아련한 맛이 난다. 삼각대 위에 핀홀 바디캡을 장착한 카메라를 올려두고 셔터를 오랫동안 열어두는 벌브 촬영을 하고 있노라면, 약간의 과장을 보태 1826년 니엡스가 노출시간이 무려 8시간이었던 최초의 사진촬영에 성공한 그 시대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다.
그런데 릴리스를 손에 쥐고 삼각대 곁에 쭈그리고 앉아 핀홀 사진을 찍는 재미도 최신형 디지털카메라의 위세에 묻힌 지 오래다. 어떤 사진이든 핀홀 사진 느낌이 나도록 바꿔주는 ‘첨단’ 기능을 가진 디지털카메라가 이미 있으니 말이다. 그래도 혹시 손수 핀홀카메라를 만들어 보고픈 독자라면 다양한 제작기가 소개되어 있는 핀홀아트(www.pinholeart.com)를 방문해 보시길.
글 조경국(카메라 칼럼니스트)·사진 제공 필름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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