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가방 돔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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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사진 좀 찍는다는 친구들이 가장 자주 바꾸는 것이 가방이다. 가방 까짓게 무슨 대수냐 하겠지만, 사력(寫歷)이 늘수록 카메라 가방도 쌓여간다. 처음에는 카메라 살 때 ‘보너스’로 끼워주는 가방으로 가볍게 시작한다. 그런데 하나둘 장비가 늘어갈수록 보너스로 받은 가방이 볼품없어 보인다. 좀더 ‘때깔’ 나는 가방으로 바꿔야겠다는 결심이 선다. 좀더 많은 장비를 넣을 수 있는 저렴한 가방으로 바꾼다. 이때까지만 해도 카메라만 좋으면 됐지 굳이 카메라가방까지 비싼 것으로 살 필요는 없다고 믿는다. 하지만 동호회에서 활동하다 보면 다른 회원들의 가방도 슬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기억하기 힘들 만큼 카메라가방 브랜드는 다양하다. 로우프로, 빌링햄, 탐락, 크럼플러, 카타, 텐바, 매틴, 델시, 헤밍스, 헤링본… 대충 아는 브랜드만 꼽아도 이 정도다. 좀 괜찮다 싶은 숄더백은 20만원이 훌쩍 넘고, 장비가 여유 있게 들어가는 큰 가방은 40만원이 훌쩍 넘는 것도 있다. 위에서 나열한 카메라가방 브랜드를 유심히 본 독자들이라면 무조건 있어야 할 이름이 빠졌다는 것을 알 것이다. 바로 현장을 누비는 사진가들이 가장 사랑하는 ‘돔키’(DOMKE). 1980~90년대까지만 해도 돔키의 전성시대였다. 프로 사진가라면 으레 돔키를 사용했다.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돔키는 프로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증거였다. 예전의 명성만은 못하지만 여전히 돔키는 카메라가방의 대명사 격이다. 해지고 물 빠진 돔키는 사진가에 대한 로망을 완성하는 최후의 아이템이다. 오직 연륜만이 가져다주는 돔키의 멋을 동경해 락스 푼 물에 세탁하는 인위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더 낡아 보이게 만드는 이도 있었다. 다른 회사 가방들은 ‘신상’이 자랑이지만, 오직 돔키만은 낡은 것이 미덕이다. 돔키의 전설은 1975년부터 시작됐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에서 사진기자로 일했던 짐 돔키(Jim Domke)는 카메라 장비를 쉽게 정리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튼튼한 가방이 필요했다. 하지만 마땅한 가방을 살 수 없자 자신이 직접 디자인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판다”는 속담이 딱 들어맞는다. 짐 돔키는 자신의 낚시가방에 영감을 얻어 칸막이를 만들어 넣고 뻣뻣한 천 재질로 가방을 만들었다. 그리고 1976년 공화당 전당대회 기간에 동료 사진기자들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가방을 주고 “사용해보고 아이디어를 달라”고 주문했다. 동료 사진기자들은 짐 돔키에게 6개의 캔맥주가 담긴 ‘식스팩’처럼 렌즈를 넣을 수 있게 칸막이를 만들고, 어깨끈 말고 손으로 들고 이동할 수 있는 손잡이를 덧붙여 달라고 주문했다. 짐 돔키는 동료들의 충고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지 않고 아이디어를 모아 쓰기 편한 ‘돔키백’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돔키백’은 나오자마자 800개가 팔리는 히트상품이 됐다. 3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돔키는 여전히 인기다. 2006년에는 30돌 기념 ‘돔키 F-2’가 한정판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별다른 디자인 변경 없이 30년 넘게 돔키가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그만큼 사진기자였던 짐 돔키가 자신뿐 아니라 그의 동료들이 느꼈던 불편함을 해결하기 위해 기능성을 살렸기 때문이다. 군더더기 없는 심플함이야말로 돔키의 매력이자 영원한 생명력이다. 지금 돔키는 미국의 카메라 액세서리 업체 티펜의 한 브랜드로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다. 글 조경국 월간 <포토넷> 기자·사진제공 썬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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