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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16 19:39 수정 : 2009.12.16 19:39

핫셀블라드 EDC. 핫셀코리아 제공

[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3억5000만원짜리 우주여행 상품과 2억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 중 택하라면? 고민할 것도 없이 ‘우주여행’이다. 하지만 지난 12일 한 백화점이 내건 ‘우주여행’ 경품 행사에서 100만여명의 응모자 가운데 뽑힌 행운의 당첨자는 백화점 상품권을 택했다. 당첨자는 사전 적응 훈련을 받아야 하는 등 이래저래 까다로운 우주여행보다는 백화점 상품권이라는 실리를 택한 셈이다. 나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우주선을 타고 112㎞ 상공에서 푸른 지구를 바라볼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우주선에서 지구를 찍을 수 있다, 상상만 해도 짜릿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미국과 소련은 우주를 탐험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1957년 10월4일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소련이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우주경쟁을 시작했다.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 성공에 충격을 받은 미국은 항공우주국(NASA)을 창설하고 달 탐사를 위한 아폴로 계획을 세운다. 1969년 7월20일 드디어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암스트롱과 올드린은 달에 첫발을 내디딘 인류가 됐다. 그들이 달로 가져간 카메라는 바로 하셀블라드 EDC(Electric Data Camera)였다.

1841년 스웨덴의 항구도시 예테보리에서 문을 연 하셀블라드는 무역회사였다. 독특한 인연으로 카메라 판매회사가 되었다. 회사 창립자의 아들이었던 아르비드 빅토르 하셀블라드는 자신의 신혼여행지인 영국에서 조지 이스트먼(코닥 설립자)을 만났다. 그 인연으로 그는 1888년부터 코닥의 상품들을 자신의 회사를 통해 유통시켰다. 하셀블라드가 카메라 제조회사로 거듭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항공용 카메라를 장착한 독일 전투기가 스웨덴에 항복하면서부터다. 스웨덴 군은 이 독일 전투기에 실려 있던 항공용 카메라 사용법을 아르비드 빅토르 하셀블라드의 손자, 빅토르(할아버지와 이름이 같다)에게 알려달라는 주문했다. 동시에 같은 카메라 제작을 의뢰했다. 빅토르는 1941부터 1945년까지 342대의 항공용 카메라 HK7을 스웨덴 군에 납품했다. 항공용 카메라뿐 아니라 시계도 생산했다. 그는 시계 제작은 품질 좋은 휴대용 카메라를 생산하기 위한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종전 후 1948년 10월6일 드디어 하셀블라드는 최초의 일반용 카메라 1600F를 내놓았다.

하셀블라드의 카메라가 미 항공우주국의 우주탐험 계획에 동참하게 된 것은 1960년 우주비행사 월터 시라가 휴스턴의 카메라 가게에서 하셀블라드 500C를 구입하면서부터다. 시라는 500C를 우주로 가져가기 위해 몸체의 가죽을 벗기고 반사를 줄이기 위해 검은색으로 칠했다. 1962년 머큐리에 탑승한 시라는 500C로 사진을 찍어서 돌아왔다. 그런데 이 500C가 사실은 우주선의 정식 탑재 목록에 들어 있지 않았다는 것. 하지만 그가 지구 밖에서 찍은 사진들은 훌륭했고 이후 우주탐험 계획에 하셀블라드가 참여하는 계기가 됐다. 월터의 500C를 시작으로 SWC(1966년, 제미니 9호), EC 500EL(1968년, 보이저 10호), EDC(1969년, 아폴로 11호), 500EL/M(1975년, 소유스호), 1990년대 우주왕복선에 실렸던 ELS, 그리고 가장 진보된 203S 모델까지 하셀블라드는 미 항공우주국의 우주개발 계획에 참여했다. 그 가운데 아폴로 11호에 실렸던 12대의 EDC는 귀환 셔틀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필름만 회수되고 달 표면에 그대로 남겨졌다.

만약 내가 달 여행 백화점 경품에 당첨된다면 암스트롱이 두고 온 그 EDC부터 찾을 생각이다.

조경국 <월간 포토넷> 기자·사진제공 핫셀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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