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X-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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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1999년 영화 <러브레터>가 개봉됐을 때 주인공 후지이 이쓰키(나카야마 미호)가 눈 내리는 학교 운동장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막샷’을 날리던 장면을 기억하는가. 후지이 이쓰키가 들고 있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바로 SX-70. 당시만 해도 온라인 중고 장터나 동호회가 활성화되기 전이어서 구하기 힘든 카메라였다. <러브레터>에 나온 이후 이 카메라의 노출 빈도는 부쩍 올라갔다. <각설탕>에서 임수정씨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이나영씨가 SX-70을 들고 나왔다. 영화뿐 아니라 광고에서도 문근영, 김태희, 정려원씨의 소품으로 등장했다. 최근에는 국민 여동생으로 사랑받고 있는 김연아씨가 모기업 우유 광고에서 들고 나왔다. ‘SX-70’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이렇게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고, 이제 중고 장터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사용하기 위해선 상당한 ‘출혈’을 감내해야 한다. SX-70의 전용필름인 ‘타임제로’는 2007년 단종됐고, 다른 폴라로이드 필름도 2008년 2월부로 모두 생산이 중단됐다. 현재 SX-70을 사용하기 위해선 빛을 줄여주는 ND 필터를 끼우고 다른 카메라 전용(M790)으로 나온 T600 필름을 사용해야 한다. 단종 직전 타임제로 필름도 비쌌지만 T600 필름도 만만치 않다. 10장들이 1팩이 보통 4만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사진 1장에 4000원, 세상에 단 1장뿐인 사진이니 값어치를 따질 수야 없겠지만 <러브레터>의 후지이 이쓰키처럼 막 찍다간 가세가 기울 수도 있다. SX-70은 72년부터 85년까지 생산됐다. SX-70의 매력은 트랜스포머도 울고 갈 변신 기술에 있다. SX-70은 사용하지 않을 경우 납작하게 접을 수 있다. 미니멀리즘의 미학을 제대로 보여주는 군더더기 없는 SX-70의 디자인은 단종된 지 25년이 지났고, 필름조차 구하기 힘든 상황이지만 사진가들의 사랑을 받고, 영화와 광고에 단골손님으로 등장하는 이유다. SX-70의 전성기 시절 앙드레 케르테스는 접으면 납작해지는 작은 폴라로이드 카메라에 반해 말년에 <프롬 마이 윈도>(from my window)라는 사진집을 내기도 했고, 위대한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도 SX-70을 즐겨 사용했다. 아직까지도 SX-70을 비롯해 그동안 출시된 폴라로이드 카메라들을 사용하고 아끼는 사람들이 많지만, 지난해 11월 20세기 사진과 광학 분야에서 수많은 히트상품을 내놓았던 폴라로이드사도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즉석카메라 폴라로이드는 ‘사소한’ 이유에서 시작됐다. 43년 눈부심을 방지하는 편광필름 기술 개발자였던 에드윈 랜드가 크리스마스에 딸의 사진을 촬영하다 “왜 지금 사진을 볼 수 없어요?”라는 질문을 받고서 촬영 후 바로 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즉석카메라를 개발하기로 결심한다. 4살짜리 딸의 호기심이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그의 결심은 47년 현실화된다. 폴라로이드사 최초의 즉석카메라 ‘모델95’와 전용필름인 ‘랜드40’을 동시에 발매했다. 당시 ‘모델95’의 가격은 89.95달러, ‘랜드40’은 1.75달러였다. 49년에는 500만달러어치를 팔아 ‘즉석카메라=폴라로이드’라는 공식을 확립시켰다. 폴라로이드사가 2006년 즉석카메라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기까지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출시한 모델은 200가지가 넘는다. 그중에서도 SX-70은 이미 끝나버린 폴라로이드의 영광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카메라다. 조경국 월간 <포토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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