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9.23 21:30
수정 : 2009.09.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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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드인코리아 첫 독자모델 코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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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기자를 사칭, 카메라를 빌려 달아난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20일 상오 10시 30분쯤 서울 중구 신당동 436 배명고등학교 앞 칠성문구사에 신문기자를 사칭한 35세가량의 청년이 가짜 신문기자 신분증을 내보인 후 코비카 카메라 1대(시가 4만원)를 빌려간 후 그대로 달아났다.”
<경향신문> 1979년 2월21일치 기사다. 당시 ‘기자 사칭’은 의외로 잘 통했다. 이 사기꾼은 이틀 동안 모두 5대의 카메라를 빌려 달아났다. 기자 신분증만 보고도 선뜻 카메라를 빌려줬던 것을 보면 당시에는 신문기자라는 직업이 꽤 믿음을 주는 직업이었던 모양이다.
옛날 신문에 나왔던 이 기사를 읽으면서 눈에 박혔던 것은 사기꾼의 기발한(?) 행태보다, ‘코비카’라는 카메라 이름이었다. 코비카는 국내 최초의 광학기기 회사였던 대한광학이 생산했던 카메라다. 대한광학이 구로공단에 문을 연 것은 1967년, 초대 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삼성그룹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2~3대 회장을 맡았던 이정림(당시 대한양회 회장)씨가 박정희 대통령의 뜻을 받들어 회사를 세웠다. 그 당시 박 대통령은 일본의 광학산업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것을 보고 정부가 투자만 하면 국내 기업도 승산이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 이전부터 광학산업의 기반을 닦았던 일본을 따라가기엔 무리였다.
광학산업에 대한 기초가 전혀 없었던 터라 대한광학은 일본 마미야와 손을 잡았다. 회사 설립 초반에는 카메라를 개발할 여력이 없어 쌍안경을 생산했다. 대한광학이 개발한 쌍안경은 상당한 인기를 끌어 40여개국에 수출해 세계 시장의 25%까지 점유했던 효자 상품이었다. 쌍안경, 현미경 부품들을 팔아 자금을 축적한 대한광학은 마미야의 기술력과 부품을 가져와 카메라를 만들어냈다. 비록 일본 기업의 손을 빌려 제품을 만들었지만 베릭스(VERIX)라는 자체 브랜드로 시장을 공략했다. 1970년대 중반까지 국내 최초의 렌즈 교환식 카메라인 베릭스 HQ 등을 생산했다. 베릭스 HQ는 마미야 528 모델과 외관이나 기능이 거의 같다.
1976년 드디어 코비카(KOBICA)라는 독자 모델을 만들어낸다. 첫 제품이 코비카 35BC. 독자 모델이라고는 했지만 일본, 독일, 캐나다와 기술 합작으로 만들어졌다. 비록 기술을 빌려오긴 했지만, 렌즈(독일 카를차이스 테사)와 셔터 박스(일본 코팔)를 제외한 나머지 부품은 대부분 국산화한 의미 있는 카메라다. “대한광학이 계속 카메라를 만들어냈더라면 국산 카메라도 세계 시장에서 통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한광학이 부도나서 더 이상 코비카를 만들던 기술이 이어지지 못했으니 참 아쉬운 일이죠.” 청계천과 충무로에서 30여년 동안 카메라 개조와 수리를 해온 김카메라 김병수 대표의 기억이다. 코비카는 1980년대 중반 대한광학의 부도로 아쉽게도 생명이 끊겼다. 5만원 안팎의 값에 가끔씩 중고 시장에 나오는 코비카 35BC는 30년 세월이 무색하게 제대로 작동할 뿐 아니라 예상외로 선명한 사진을 찍어준다.
조경국 월간 <포토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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