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없는 국산 대형카메라 ‘JungW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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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카메라 히스토리아
누리꾼이 뽑은 최고의 호러퀸은? ‘심은하’였다. 지난 7월 한 통신사의 인터넷티브이(IPTV) 채널에서 시청자 3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22표를 얻어 1위에 올랐다. 1994년 당시 문화방송(MBC) 납량드라마 〈M〉에서 마리 역을 맡아 열연한 덕분이다. 내가 꼽는 호러퀸(?) 심은하씨의 최고의 작품은 역시 한석규씨와 함께 출연했던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작은 동네 사진관 스튜디오, 정원(한석규)의 카메라 앞에서 해맑게 웃는 다림(심은하)의 모습이 두고두고 기억나는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이 글의 주인공은 심은하씨가 아니라 <8월의 크리스마스>에서 다림을 촬영했던 국산 대형카메라 ‘JungWoo M480-A1’(이하 ‘정우’)다. 1980년대는 <8월의 크리스마스>에 나오는 정우뿐 아니라 삼보, 남대문, 펜타 등 국산 대형 카메라들의 전성시대였다. 대형 카메라(4×5인치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의 경우 몸체와 상관없이 렌즈를 교환해 사용할 수 있고 구조가 간단하기 때문에 국내 업체의 기술력으로 충분히 만들 수 있었다. 당시 국산 대형 카메라 대부분은 위스타나 도요 등 외국 업체 제품을 복제한 것이다. 하지만 비싼 외국 대형 카메라를 대체하기 위한 국내 업체들의 노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국산 대형 카메라는 ‘공룡이 멸종하듯’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정우’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해 봐도 소용없다. 정확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전화를 돌린 곳을 헤아려보면 손가락·발가락을 동원해도 모자란다. 겨우 알아낸 것이 1980년대 초반 종로 4가에 있던 정우양행이란 곳에서 만들었고, 외국 제품에 비해 정밀도가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가격이 저렴해 소규모 사진관이나 스튜디오, 결혼식장에서 많이 사용했다는 정도였다. 정우양행이 카메라 사업을 접은 후 ○○의료기기로 이름을 바꿨다는 이야기를 듣고 물어물어 통화를 했지만 회사 대표를 맡고 계신 분은 “‘정우’라는 카메라 만든 적 없어요”라고 딱 잘라 말했다. 거기까지였다. 내가 ‘정우’에 대해 알아보려고 노력했던 것이. 1980년대 국내 업체에서 생산했던 대형 카메라들은 ‘실체’는 있으나 ‘역사’가 없다. 몇 대가 생산됐는지, 무게가 얼마나 나가는지, 주름상자의 재질과 레일의 길이는 얼마나 되는지, 정확한 모델명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대형 카메라만 생산하는 카메라업계의 역사이자 신화인 린호프가 1911년에 만든 홍보 팸플릿을 지금도 찾아볼 수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30년도 되지 않은 국산 대형 카메라에 대한 기록은 왜 이렇게 부족한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승자의 기록은 태양의 조명을 받아 역사로 남고, 패자의 기록은 달빛에 바래져 신화가 된다”는 소설가 이병주 선생의 명언은 사소한 기록조차 찾아보기 힘든 국산 카메라 앞에선 소용없는 말이다. 단지 만들어서 팔기에만 바빴을 뿐 카메라에 대한 기록을 남길 생각은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한국카메라박물관 김종세 관장은 “1980년대 국내에서 생산했던 대형 카메라는 사용설명서나 홍보물조차 찾기 힘들어 정확한 자료 수집이 힘들다”며 제대로 된 기록이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기록이 전무해도 만약 당시 대형 카메라를 생산했던 업체 가운데 하나라도 살아남아 있다면 아픈 마음이 덜할 것이다. 무엇이든 기록으로 남기고 볼 일이다. 글·사진 조경국 월간 <포토넷>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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