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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30 18:37 수정 : 2010.01.07 13:49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매거진 esc] 차우진의 모어 댄 워즈





열 몇 살의 일이다. 자전거를 끌고 먼 길을 나섰다. 바다를 보고 싶었고 이왕이면 소래포구까지 가고 싶었다. 그래서 인천 남동공단을 가로질러, 이름 모를 산길을 넘어, 완전히 낯선 동네까지 달렸다. 산길에선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팔꿈치와 무릎이 까졌다. 하지만 어째선지 바다는 보이지 않았다. 인적 없고 차도 없는 시골길이 오후의 그늘만큼 길게 누워 있었다. 저 길 끝에 가면 바다가 보일까. 알 수 없었다. 저 굽은 길을 돌면 바다가 보일까. 알 수 없었다. 해는 지고 있는데 도대체 여기가 어딘지도 몰랐다.

간판도 없는 구멍가게에서 우유를 마신 게 언덕인지, 길모퉁인지 정확하지 않다. 꼼짝도 못할 만큼 배가 고팠고 300원밖에 없었고 구멍가게 할머니는 표정도 말도 없었다. 길가에 앉아 서울우유인지 매일우유인지를 마시는 동안 해가 툭, 떨어졌다. 바다를 생각하고 말고도 없이 지나온 길로, 그러니까 집으로 가야 했다. 그새 무르팍과 팔꿈치엔 피딱지가 들어앉았다. 공단 옆 산업도로엔 어디서 왔는지 모를 화물트럭들이 으르렁거렸다. 멀고 또 멀었는데 이상하게 더 멀어지는 것 같았다. 어둠이 시작된 곳에서 바람이 불었다. 어딘지 모를 곳에서 밥 짓는 냄새가 났다. 내가 먹을 밥은 아니었다. 가로등도 없는 어둠 속에서 앞으로만 달렸다.

‘집으로 가는 길’은 황보령의 <샤인스 인 더 다크>(Shines In The Dark) 앨범에 실렸다. 산울림의 ‘청춘’과 닮은 노래다. ‘청춘’은 일종의 만가(輓歌)였다. 그러니까 어디 따뜻한 곳으로 가는데 들리는 노래가 곡소리란 얘기다. 무시무시하다. 발걸음은 무겁고 시야는 캄캄하고 걸음마다 느릿하게 뭔가 발목을 스친다. 뱀 같은, 요컨대 죽은 자의 손이 잡을 듯 잡을 듯 발꿈치까지 기어오다가 따라오다가 놓치고선 아슬아슬하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어쨌든 간신하다. “오늘은 무엇을 해야 슬프지 않을까”란 가사처럼 집에 가는 길에서도 우리는 슬프다. 이것저것이 죄다 슬프지만 슬픔 자체보다 이 슬픔이 지속되리라는 게 더욱 슬프다. 이 지속을 막을 길 없으므로 또한 비극이다. 그래서 노래는 무겁게 가라앉는다. 그때 나는 기껏 열 몇 살이었다. 어둠 속에서 집에 가지 못할 것 같아 무서웠다. 이제야 깨닫는다. 때마침 기타도 높은음자리로 솟구친다. 돌아갈 곳을 정한 자들은 어쨌든 나아간다. 마침내 가닿는다. 따뜻한 그곳 보드랍고 안전한 거기, 당신에게로.


집으로 가는 길에 들려오는 소리들

언제나 같은 길이지만 항상 낯선 불빛들

사람들은 이제 찾아볼 수가 없어

늦은 날 바람만 부는 거리에 있는

오늘은 무엇을 해야 슬프지 슬프지 않을까

늦은 날 바람만 부는 거리에 있는

황보령 ‘집으로 가는 길’

차우진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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