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
[매거진 esc] 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단어 중에 하나는 ‘청춘’이다. 일상생활에선 잘 쓰지 않고 책이나 노래에서나 가끔 볼 수 있지만, 이상하게 청춘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면 저절로 마음이 가게 된다. 사전을 찾아보니, 청춘이란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고 풀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청춘이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말하고 있으면, 문득 발아래 스러진 낙엽을 밟은 듯 자연스럽게 고개가 숙여진다. 어디선가 조명이 잦아들면서, 낮은 기타 소리와 읊조리듯 처연한 김창완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다. 언젠간 가겠지 푸르른 이 청춘 지고 또 피는 꽃잎처럼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내 젊은 연가가 구슬퍼. 가고 없는 날들을 잡으려 잡으려 빈 손짓에 슬퍼지면 차라리 보내야지 돌아서야지 그렇게 세월은 가는 거야. (1981, 산울림, 청춘) 이 노래를 배경으로 한 내 청춘의 한 장면은 영등포의 어느 환한 방이다. 집이라고 부르기에도 뭐한, 대로변에 화장실이 따로 나와 있는 그냥 방 하나였다. 창이 공사를 하다 잘못 만든 구멍처럼 비정상적으로 커서, 아침이면 햇빛이 고스란히 들어와 잠을 자려고 해도 더 잘 수 없는 방이었다.
그날은 휴일이었다. 보통처럼 아침에 잠에서 깼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의 강렬한 햇빛이 내 눈꺼풀 위를 짓누르고 있었다. 눈을 뜨고 싶지 않았다. 눈을 뜨면 왠지 눈부신 햇살 속에 껍질처럼 말라 있는 내 몰골을 제삼자가 돼 목격할 것만 같았다. 그때 나에게 청춘은 달 밝은 밤이면 창가에 흐르는 구슬픈 연가였고, 햇빛 쨍한 낮이면 창으로 넘어오는 서글픈 송가였다. 나는 내 글을 쓰면서 살고 싶었지만 남의 글을 고쳐주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있었고,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받을 만한 처지가 못 되었고, 월급을 탔지만 내의를 사줄 어머니, 아버지는 없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맨살에 와 닿는 햇빛이 너무 따뜻했다. 누가 내 몸을 애정으로 만져주는 것처럼 포근했다. 나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왔다. 환한 데서 무슨 주책인가 싶어 얼른 훔쳤지만 이번엔 막고 있던 울음이 생으로 터졌다. 한참을 목이 쉬도록 울고 나니 이상하게 속이 후련했다. 청춘을 왜 파랗게 새싹이 돋아나는 봄철이라고 했는지를, 다 울고 난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젊음이라는 얼어붙은 땅을 맨발로 다 지난 다음에서야 비로소 마음속의 파란 봄철을 맞이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청춘은 기어코 견뎌야 할 통과의례이다. 울고 난 다음에야 속이 후련해지는 것처럼, 지나간 다음에는 반드시 웃는 얼굴로 돌아보게 될 것이다. 그러니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는 피로한 젊음들이여, 파란 싹을 틔울 때까지 어떻게든 포기하지 말고 조금만 더 힘을 내는 것이다. 조진국 작가/<고마워요, 소울메이트>,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