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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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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나는 그녀를 낭만의 화신이라고 불렀다. 국문과답게 낭만적인 친구가 많았지만, 그녀는 그중에서도 궁극이었다. 퇴폐적인 낭만파와 순수한 낭만파로 나눈다면, 그녀는 순수한 낭만파의 선두였다고 할 수 있다.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은 후엔 파란 컵에 물을 담아와 ‘여기에 파란 하늘이 들어 있어’라는 민망한 대사를 아무렇지 않게 했다. 일요일 아침에는 심각하게 할 말이 있다며 광안리 바다로 불러놓고는 마종기의 시를 읽어주었다. 혼자 읽기엔 너무 슬프잖아라고 말했다. 거의 매일 보면서도 판화를 만들어 찍은 엽서를 집으로 부쳤고, 교내 방송국의 스피커 밑에서 이름 모를 클래식을 들으며 울기도 했다. 아기 같은 피부에 동그란 눈망울 때문에 유난히 어려 보이는 그녀와 나는 말 그대로 ‘베스트 프렌드’였다. 교양수업을 같이 듣는 한문과 여학생에게 반했을 때도 대신 가서 내 마음을 전해주었고, 군대에서도 그녀가 보내오는 알록달록한 편지를 읽으며 보낼 수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소식이 끊어진 그녀를 다시 만난 건 3년 전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어려 보였지만, 그사이 결혼을 하고, 이혼을 하고 딸아이와 지낸다고 했다. 우리는 2층 카페에 앉았다. 전면이 통유리로 돼 있어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도 있고, 음료를 종류별로 리필해서 먹을 수 있는 자율식 카페였다. 그녀와 나는 나이가 드니까 이런 게 좋아지더라며 똑같이 유자차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바닥에 남은 차가운 껍질에 뜨거운 눈물을 부어.
그만큼 달콤하지는 않지만 울지 않을 수 있어.
온기가 필요했잖아. 이제는 지친 마음을 쉬어.
이 차를 다 마시고 봄날으로 가자. (2008, 유자차, 브로콜리 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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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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