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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07 17:38 수정 : 2010.01.07 17:16

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매거진 esc] 조진국의 모어 댄 워즈





추석과 설, 일 년에 두 번 서울은 텅 빈다. 거리에 서면 인적이 끊긴 미래의 어느 도시로 공간 이동을 한 것처럼 묘하다. 이번 추석에도 고향에 가질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부터다. 제사를 지내지 않기 때문에 문득 보고 싶을 때 산소에 갔다 오는 걸로 대신했다. 송편을 빚고 산적 냄새를 맡는 대신 명절에도 문을 여는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다. 사람은 없고, 길만 있는 길을 걷는 기분도 나름 괜찮았다. 집이 있어도 가지 않는, 갈 수 없는 친한 동생 두 명과 함께였다.

동생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새어머니와도 사이가 멀어져, 이제는 연락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하루 12시간 일하고 한 달에 120만원을 받는 그는, 30만원씩 저축해서 언제 제 가게를 열겠느냐며 한숨을 쉬었다. 일본으로 건너가 식당에서라도 일하면서 돈을 모아 다시 오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다른 동생은 엄마가 돌아가신 책임이 아버지에게 있다고 미워하다 결국 집을 나오게 되었다. 얼마 전 아버지에게 몇 년 만에 안부전화를 했다고 했다. 못 이기는 척 반겨줄 줄 알았던 아버지는 다신 볼 일이 없을 거라고 냉정하게 끊었다고 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는 없다며 먼저 전화하라고 설득한 내 잘못처럼 느껴졌다. 동생은 새벽 도로변에서 지나가는 트럭에 울음이 묻힐 때까지 앉아 있었다고 했다. 길을 걷던 할머니가 왜 그러느냐고 물어보는 통에 마음껏 울지도 못했다고 했다.

그 나이 때의 나도 그랬다. 아버지의 유산으로 받은 300만원을 들고 올라와 보증금을 걸고 화장실이 밖에 달려 있는 지하방을 얻었다. 모든 게 캄캄했다. 아침에도 캄캄했다. 내 앞날도 그렇게 영원히 캄캄할 것 같았다. 그때는 온통 찬바람이었다.

찬바람 불 때 내게 와줄래

세상이 모질게 그댈 괴롭힐 때

신나게 놀자 웃자 한바탕

하하하하하 이 밤이 다할 때까지

(2008, MC몽, 서커스)


동생들은 지금 즐거운 세상 분위기와 달리 찬바람이 새어드는 천막 안에서 아슬아슬한 서커스를 하고 있는 것이다. 대롱거리는 줄을 잡고 혹시나 떨어질까 발을 젓고, 불타는 원 속을 통과해야 살아남는다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다. 걱정 마. 모든 건 지나갈 거야. 언젠가는 웃을 날이 올 거다,라는 말은 차마 할 수가 없었다. 대신 오늘은 마음껏 먹고 더 재미있게 놀자,라고 말했다. 울고 있다고 모진 시간이 빨리 가지는 않는다. 세상에 대고 욕한다고 울분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젊음은 한바탕의 서커스다. 곡예를 하는 사람도 지켜보는 사람도 조마조마하지만, 통과한 다음에는 즐거운 기억으로만 남아 있는 서커스다. 차라리 웃자. 웃다가 다시 울게 되더라도 웃고 있는 동안에는 신나게 웃자.

조진국 작가/<고마워요, 소울메이트>, <사랑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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