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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5.06 14:08 수정 : 2010.05.06 14:08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야구를 끊으려 했었다. 불과 얼마 전이다. 바닥을 기다 못해 숫제 눌어붙어 있는 팀 성적도 성적이었지만, 무엇보다 넌덜머리가 나게 만든 건 팬들이었다. 다른 팀 팬들이 아니라 바로 우리 팀 팬들.

물론 팀 성적이 좋지 않은 시기의 야구 커뮤니티에는 별의별 갑론을박이 다 나온다. 특히 투수진이 맥을 못 추고 있을 때 주로 도마에 오르는 것은 감독 책임론. 딱히 새로울 것 없는 레퍼토리지만 이젠 그것도 더는 못 봐주겠는 거다. 게다가 인터넷이야 안 들어가면 그만이려니 했더니 어느 과격한 팬이 구단 버스 앞에서 감독을 붙잡고 실랑이를 벌였다는 소식이 포털을 장식하면서 다른 애꿎은 팬들까지 낯을 붉히게 만들었다. 어휴, 그깟 공놀이가 뭐라고.

그런저런 사건들 때문에 온통 꿀꿀하기만 하던 어느 휴일, 모처럼 야구장을 찾았다. 말은 이렇게 해도 일찌감치 예매해놓은 표는 또 썩히기 싫었던 까닭이다. 여하튼 그리 유쾌하지 않은 기분으로 관중석에 앉았는데, 5회도 채 되지 않아 당시 일련의 사건들로 빚어졌던 스트레스들은 자취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처방이 되어준 것 또한 팬들. 홈팀보다 더 많은 수로 야구장을 찾아와 함께 목소리를 높이며 응원하는 ‘우리 편’ 팬들이었다. 어느 순간,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들 모두가 나와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는 기분 좋은 쾌감이 뒤통수를 쳤고, 그 듬직한 기분이 선수들뿐만 아니라 같은 팬들에게 제공하는 에너지 또한 실로 보통이 아니라는 걸 느꼈던 것이다.

이 기분, 처음이 아니다. 2008년 6월, 야구장이 아니라 시청 앞 광장에 서 있었던 그때도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다. 17인치 모니터 속 글줄들로 넘겨짚어선 안 되는 열정들이, 그곳에서는 나와 ‘같은 편’이었다. 그리하여 다시금 깨닫는다. 나는 이 팀을 떠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아무리 9시 뉴스를 볼 때마다 ‘이놈의 나라’라는 관용구를 입에 달고 사는 나지만, 의외로 가까운 곳에 ‘같은 편’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놈의 나라를 결코 뜰 수 없다는 사실을. 피곤한 땅에서의 삶은 그렇게 위안과 에너지를 얻는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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