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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0.03.10 18:42 수정 : 2010.03.10 18:42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평소답지 않게 일찍 눈이 떠졌다. 그럼에도 몸은 어느 때보다 가볍다. 보는 사람 없다고 기역니은 춤이 절로 나온다. 이유가 있다. 오늘은 2010 시즌 프로야구 시범경기 첫 중계방송이 있는 날. 야구를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몸 컨디션이 이렇게까지 달라진다는 것도 인체의 신비다. 시작에 맞춰 치킨까지 주문했으니 그야말로 만반의 준비 완료. 하지만.

이처럼 비정상적인 엔도르핀 과다분비 상태는 경기 시작 후 채 한 시간을 가지 않았다. 3회도 안 되어 우리의 선발은 연타를 허용하고 무더기 실점. 야구를 보고 싶다던 추상적인 열망은, 이내 야구를 보고 있다는 현실의 고통으로 바뀌었다. 아아, 그렇다. 야구를 본다는 것은 이런 기분이었다. 입에서는 된소리가, 손에서는 삿대질이 끊이지 않는 아드레날린과 혈압 상승의 향연. 대체 저놈들은 겨울 내내 뭘 했기에 변한 게 하나도 없냐. 아니 그것보다, 나는 대체 무엇 때문에 기나긴 동짓달 동안 이딴 야구를 기다려 왔단 말인가.

조목조목 따져 보면 더더욱 그렇다. 야구를 보는 목적은 이기는 꼴을 보고자 함이고, 이기기 위해서는 점수를 내야 하고, 점수를 내기 위해서는 안타를 쳐야 한다. 그런데 시즌 단위로 볼 때 아무리 팀타율이 높은 구단이라도 3할을 넘기기가 힘들다. 말하자면 우리가 경기를 보면서 시원한 안타나 홈런에 환호할 기회가 주어질 확률 또한 30% 미만이라는 거다. 게다가 안타를 쳐서 살아 나간들, 모든 진루가 득점으로 연결되는 것도 아니다. 점수를 내면 또 뭘 해. 상대 팀이 더 많은 득점을 기록하면 지는데. 이것저것 다 계산에 넣다 보면 야구팬들은 한 경기를 관전하는 서너 시간 중 8할 이상의 시간 동안 스트레스만 잔뜩 받는다는 결론이 나온다.

고통은 영속적이고, 어쩌다 찾아오는 환희는 짧다. 야구를 인생에 빗대는 이들은 흔히 후자에 방점을 두지만, 사실 산다는 것의 실체도 온갖 좌절과 스트레스와 별 볼 일 없는 일의 연속 아니던가. 그런데 어쩌겠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은걸. ‘내일은 이기겠지’라는 별 근거 없는 희망과 함께 텔레비전을 껐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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