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0.02.24 19:16
수정 : 2010.02.24 19:16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미적미적하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지금 시각이 새벽 다섯 시. 편집자가 출근할 무렵까지는 대략 네 시간쯤 남은 셈이다. 그리고 내가 마감해야 하는 원고는 아직 20장가량이 남았다. 설상가상으로 눈꺼풀도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아, 안 돼. 머리를 벅벅 긁으며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때는 하루 전으로 돌아간다. 25장가량의 기획기사 하나와 30장짜리 인터뷰 원고 하나의 마감이 이틀 뒤로 다가온 날. 하루에 한 건씩 해치운다면 문제없으리라 생각하고 책상에 앉았다. 근데 이거 뭐 첫 문장부터 도통 써지지가 않는 것이다. 인터넷으로 자료를 검색하다 보면 글이 좀 풀리려나 싶어 포털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소녀시대 삐끗 방송사고’ 기사에 낚여 이리저리 실시간 검색어 순위에 질질 끌려다니다 보니 훌쩍 몇 시간. 안 되겠다. 일단 오늘은 자자. 푹 쉬고 집중력을 높여서 마감 전날에 전부 해치우자. 그러고는 쿨쿨 자버린 것이 결국 화근이었던 게다.
문제는 제대로 몰아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오늘까지도 쓸데없이 초등학교 동창 미니홈피 같은 데를 들락거리며 ‘아이고, 쯧쯧. 얘도 아줌마 다 됐네’ 하며 남 걱정이나 하고 앉았다는 것에 있다. 마감 때만 되면 이 소소한 웹서핑이 어쩜 그리도 재미나는지. 어쨌든 원아웃 주자 2·3루 상황에서(어제의 현실) 타자를 고의사구로 걸러 만루를 만들고(어제의 결단) 땅볼 타구를 유도하여 병살로 싹쓸이하겠다던 계획은(오늘의 작전) 집중력 없는 투구로 대량 실점의 위기에까지 이르고 말았다(오늘의 현실).
이럴 때가 아니다. 넋 놓고 있다가 밀어내기 볼넷으로 점수를 헌납한다면 그야말로 최악. 일단 은하계에서 가장 공포스러운 존재인 편집자에게 문자를 띄워 늦어도 점심 전까지는 보내겠다고 배수진을 치고 나니 글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한다. 다음 마감부터는 절대로, 절대로 이러지 말아야지. 이를 갈며 맹세하지만 나는 알고 있다. 당장 다음 마감부터 이 맹세 또한 공수표가 될 것임을.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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