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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30 18:31 수정 : 2009.12.30 18:31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대타로 뛴다는 걸 너무 쉽게 생각했다. 기자의 원고 요청을 흔쾌히 수락할 때만 해도 어차피 이벤트성이니 부담 없이 휘둘러 보자는 마음이었다. 짧은 단타를 기록해도 너그러이 이해해줄 것이고, 재수 좋게 지난 8월30일 기아 대 두산전의 대타 장성호처럼 만루홈런이라도 날린다면 내게는 영광, esc로서는 작전 성공 아니겠는가.

대타로 선다는 것은 상대팀 투수와의 싸움만은 아니다. 그는 그 타석의 원래 주인인 자기팀의 선발타자와도 대결해야 한다. 감독은 현재 아웃카운트와 출루 상황, 상대 투수와의 전적 모두를 종합해서 대타를 내보낸다. 즉 대타를 쓴다는 건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지금 이 상황에서 가능한 최선의 선택인 셈이다. 따라서 대타는 잘해야, 그것도 타석의 원래 주인보다 잘해야 한다. 만약 그가 삼진을 당한다면 단순히 못했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대타를 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다. 한 게임 안에서 돌고 도는 수많은 타순 중 잠깐 스치는 한번의 이벤트이긴 하지만 그 짧은 순간 대타자가 지게 되는 무게란 이토록 만만찮은 법이다. 이러한 이중의 싸움을 이겨내고 성공적으로 작전을 수행했을 때만 우리는 대타를 위해 박수를 쳐준다. 하지만 10타석 중 세번만 안타를 치면 실력 좋은 3할 타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할 때 그 단 한번의 타석에 선 대타가 10할의 결과물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비난하는 것이 과연 온당할까?

그렇다. 사실 이 모든 건, 당장 채워야 할 원고지 다섯장 분량은 잠실야구장만큼 광활하고, 글의 갈피는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서클 체인지업처럼 어떻게 손을 대야 할지 몰라 허우적댄 내 원고에 대한 변명이다. 그럼에도 부연하자면 최선의 결과란 가능한 경우의 수 안에서 최선을 다한 결과지, 가장 좋은 최상의 결과가 아니다. 그러니 우리의 삶 속에서 대타들이 보여주는 수많은 헛스윙과 삼진 역시 최선의 결과로 받아들여줘야 하지 않을까.

위근우 <10아시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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