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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23 18:52 수정 : 2009.12.23 18:52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그러니까 결국 야구 때문이었다. 휴대폰 이야기다. 텔레비전 중계를 볼 수 없을 때, 혹은 경기장에서 타구장 소식을 실시간으로 확인해야 할 때 디엠비 방송의 프로야구 중계는 무엇보다 소중하다. 지난 한해도 그 덕을 톡톡히 봤다.

휴대폰을 바꿔야겠다고 결심한 때가 두 달 전. ‘문제의’ 아이폰이 들어오느니 마느니 설왕설래만 이어지던 무렵이었다. 스마트폰이라는 신기술에 대한 기대와 욕망이 개인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부풀어 있었지만 바로 저 이유 때문에 다시 2세대 폰의 옛길을 선택했다. 두 번째 이유는 번호. 피시에스라는 용어가 익숙하던 시절 개통한 까닭에 뒷자리 골라잡기가 쉬웠던 내 번호는 극히 외우기 쉬운 리듬감을 가지고 있다. “어디 나이트클럽 웨이터 알바라도 하십니까?”라는 찬탄 아닌 찬탄을 들을 만큼. 그러다보니, 아무리 3세대 휴대폰들의 유혹들이 넘쳐나도 10년간 꿋꿋이 번호이동의 외길만을 걸어왔던 것이다.

사실 번호 문제는 중요하지 않다. 단축번호와 초성 검색으로 모든 게 끝나는 세상에 대리운전 영업을 할 것도 아니면서 외우기 쉬운 번호가 무슨 소용이람. 허나 제아무리 이동통신의 혁명이라 한들 프로야구 중계 하나 못 본대서야 또 곤란한 노릇. 뭐 그렇게 해서 어쨌든 디엠비 시청이 가능한 휴대폰 중 나름 최신 기종의 전화기를 손에 넣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디어 아이폰은 뻑적지근하게 한국에 상륙했다.

하지만 ‘혁명’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디엠비도 안 되면서…’라며 나와 경쟁사의 비웃음을 샀던 아이폰은, 상륙 한 달 만에 프로야구 전 경기를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인터넷 방송사의 애플리케이션을 떡하니 내놓았다. 그때부터 복통이 시작되었다.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자랑삼아 슬그머니 꺼내놓는 아이폰도 곱게 보일 리 없다. 무식이 죄다. 그 정도는 가능하리라는 것을 어찌 예측하지 못했던 걸까. 휴대폰 할부금 완납까지, 이제 22개월 남았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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