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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2.09 18:34 수정 : 2009.12.09 18:34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선현의 말씀이 늘 옳지만은 않다. 애덤 스미스 선생은 <국부론>에서 “우리가 빵을 먹을 수 있는 것은 빵가게 주인의 자비심 덕택이 아니다”라고 했다. 그리고 이 말은 이후 자본주의의 금언이 되었다. 하지만 21세기 한국에서, 야구팬들은 구단과 모기업의 자비심 덕에 프로야구를 즐길 수 있다. 지난주 프로야구선수협회의 노조 설립 결정 이후 각 구단의 눈치를 살피는 언론보도들이 이를 증명한다. ‘선수들이 노조를 결성할 경우 구단을 없앨 수도 있다’라. 거참. 올해만 스무 차례가 넘게 내 돈 내고 야구장을 다녔고(그 흔하다는 할인혜택 한번 없이), 고가의 구단 상품도 5종 이상 구매한 야구팬 입장에서 황송해 죽겠습니다. 예.

모르는 바 아니다. 모기업의 광고 지원 없이는 한국의 모든 구단이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는 것을. 그런데 관중 500만 시대의 ‘광고’에다 ‘지원’이라는 말을 붙이는 게 옳을까? 일본에서 자립 구단의 성공 모델을 확립한 라쿠텐 골든 이글스. 그들도 수익의 상당부분을 광고에서 확보한다. 모기업이 없다 뿐이지 어쨌든 스폰서로부터 투자를 받는다는 얘기다. 그 스폰서들은 모두 자선사업가인가? 관중 500만 시대가 열리면 노조 논의를 하자던,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어느새 차디찬 티끌. 말을 꺼내기가 무섭게 ‘시기상조’의 저급 장례지도사들은 구단과 한국 프로야구의 임종을 거들겠다는 듯 협박이다.

노조가 생기면 선수들은 ‘닥치고 파업’일 게고 투수들은 모두 시속 150㎞로 화염병을 던져댈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상식과 합리를 이야기하기가 어찌 이리도 힘들까? 더 갑갑한 것은 자칭 야구팬이라는 자들이 거드는 노조 시기상조론이다. 단지 어이없는 경기장 시설 때문에 선수들이 쓰러지는 모습을, 올 시즌만 몇 번이나 반복해서 목격하지 않았던가. 선수들이 받는 불평등한 처우와 고통을 알 만큼은 알 양반들이 그 모든 풍경에 눈감고, 당장 내년 시즌에 야구 못 볼까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라니. 이건 정말 노동자의 문제를 넘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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