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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1.18 18:44 수정 : 2009.11.18 18:44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밤새 꽤 긴 원고 하나를 마무리했다. 마감을 1시간여 앞두고, 두어 번 퇴고를 거쳤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아 도로 처음부터 훑어간다. 디테일을 고쳐서 될 문제가 아니군.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은 탓이다. 머리를 싸매고 괴로워하는 틈에 분침은 마감 시간을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 있다. 어쩔 수 없지. 송고하는 수밖에. 에라 모르겠다며 컴퓨터를 끄고 침대로 다이빙해서 그대로 기절.

몇 시간 후, 고양이가 왱알왱알 사이렌을 울려대는 통에 잠에서 깼다. 몽롱한 상태로 녀석의 화장실을 치우는 와중, 간밤의 원고 생각이 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아무래도 요사이 일이 너무 많았던 탓이다. 심지어 이번주는 2주, 3주, 4주 주기의 마감이 모두 겹친 (자칭) 그랜드 크로스 주간. 일의 가짓수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지금은 충치라는 병마에 맞서 신경치료라는 고통스러운 투병 생활까지 이어가고 있지 않은가(흑흑).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지도 못하면서 이 무슨 팔자에 없는 일중독이람. 덮어놓고 새로운 일을 넙죽넙죽 받다간 결국 원고들의 퀄리티가 떨어질 수밖에 없고 충전의 시간을 가지기도 힘들어질 터.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고양이 응가를 치우고 컴퓨터를 켰더니 편집자로부터 메일이 와 있다. “이번 원고, 좋은데요.” 으음?

몇 경기째 안타 맛을 보지 못한 타자가 있다. 그가 타격감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것은 ‘잘 때렸지만 중견수 플라이 아웃이 된 타구’가 아니라 ‘빗맞았지만 운 좋게도 바가지 안타’다. 신기하게도 거의 모든 타자들이 이 결과론의 지배를 받는다고. 글쟁이들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잘 썼다며 의기양양하게 송고한 글에 미적지근한 반응이 돌아오는 것보다는 스스로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호응이 따를 때 의외의 자신감을 얻기 마련.

책상 앞에서 기지개를 켰다. 지금이야 이래도 다들 언제 끊길지 모르는 일투성이 아닌가. 좌판은 벌일 수 있을 때 벌여 놓아야 한다. 언제 투덜댔느냐는 듯, 진하게 탄 커피 한 잔과 함께 다시 새로운 타석에 섰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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