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11.04 18:48
수정 : 2009.11.04 18:48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나지완의 힘찬 타구가 잠실야구장의 좌중간 담장을 갈랐다. 그리고 이것은 2009년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장면이 되었다. 끝내기 홈런을 친 나지완도 울었고, 환호하며 더그아웃에서 뛰쳐나온 기아 선수들도 울었고, 통한의 실투로 최종전의 패전투수가 된 채병용도 울었다. 나도 조금 울었다. 곁에서 아기작대며 밥을 먹고 있던 우리 집 고양이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아주 조금. 아이고 타이거즈, 이게 얼마 만인가. 축하합니다.
야구팬으로서 올해 기아 타이거즈의 우승이 각별했던 것은 그들이 한국시리즈 내내 보여주었던 경기 내용 때문이었다. 야구해설가들과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시리즈와 같은 단기전에서는 세밀한 전략과 전술을 가져가야 한다고. 말하자면 선발투수의 구위가 깻잎 한 장만큼만 떨어져도 불펜투수들에게 동원령을 내리고, 적절한 타이밍에 대타에 대주자까지 써서 한 점 한 점을 따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기아 타이거즈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7차전을 제외하고 그들이 승리를 따낸 세 경기는 모두 굳건한 선발투수로 하여금 7~8회까지 마운드를 지키게 했다. 아무리 에스케이가 단기전의 최강자라 한들, 대들보처럼 마운드에 버티고 있는 막강 선발투수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고개를 떨군 에스케이 선수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부상 때문에 허리도 채 굽혀지지 않는 상태로 포스트시즌에 꾸준히 출장했던 정대현의 표정은 어둡고, 패전투수는 눈물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내가 알기로 채병용 또한 이 경기가 끝나면 곧바로 수술대에 올라야 한다. 딱한 마음에 혀를 찼다. 모든 방송사가 돌아가며 중계하는 포스트시즌 경기를 빼놓지 않고 보았지만, 저런 몸 상태로도 꾸역꾸역 마운드에 오르는 그들의 몸을 걱정하는 해설가의 코멘트를 들은 기억은 단 한 번도 없다. 모두가 부상 투혼 찬양 일색이었지. 정말 모르겠다. 그나마 멀쩡해 보였던 선발투수도 조기에 내리고 몸이 아프건 말건 가용 인원을 총동원하는 게 그들 말대로 ‘단기전에 강한 한국 야구’라는 건지. 적어도 이제 프로스포츠에서만큼은 처절한 투혼 타령도 촌스러울 때가 되지 않았나 싶은 것이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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