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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10.07 17:41 수정 : 2009.10.07 17:42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쌓아 놓기만 하던 디브이디 타이틀을 꺼냈다. 그렇게 영화 한 편을 다 보고 나도 시간이 남는다. 사 놓고 읽지 않았던 만화책을 뒤적이고, 공을 던지며 고양이와 한참을 놀아줘도 여전히 여유롭다. 이상할 것 없는 일이다. 마침내 프로야구 정규 시즌이 끝났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총 스물네 시간, 인터넷 야구 소식을 클릭해 대는 시간까지 포함하여 하루 평균 네 시간 이상을 빼앗던 경기들은 이제 없다. 물론 아직 포스트시즌이 한창 진행중이긴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덤이요, 남의 잔치일 뿐이다.

시즌 종료와 함께 찾아온 여유는 단지 시간적인 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서두에서 예를 든 것처럼 야구 외에도 집안에 즐길거리는 차고 넘친다. 그리고 만화와 영화, 고양이는 어이없는 실책을 하지도 않고, 참패하지도 않으며, 리모컨을 던져 부수게 만들지도 않는다. 물론 가끔 욕지기가 나오는 영화나 만화를 만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그럴 땐 그냥 끄고 덮어버리면 그만이다. 요컨대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당연히 밤새 전전긍긍하던 야구 경기의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얘기다. 아아, 이 좋은 것들을 놔두고, 왜 나는 그토록 어이없는 팀에만 매달려 오매불망이었을까.

사실을 말하자면 여기까지 전부 거짓말이다. 시즌 끝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잘 때도 내내 경기장 꿈만 꾸고, 눈을 뜨면 ‘올해 더이상 야구란 없어’라는 슬픈 진실이 꽤 쌀쌀해진 바람과 함께 내 몸을 감싼다. 밤새 텁텁해진 입을 달래려 냉장고에서 보리차를 꺼내 마실 때마다 상실감도 함께 컵에 따라진다. 낮 경기 때마다 관중들을 괴롭히던 뜨거운 자외선도, 일어서서 머리를 감싸며 몸부림치게 만들던 실책성 플레이도, 무언가를 집어던지며 고래고래 질러 대던 야유까지도, 모든 게 그립다. 마침내 신음과 함께 내뱉는 한마디. “져도 좋으니까(사실 이건 거짓말) 제발 야구 좀 봤으면 좋겠다….” 잔뜩 힘이 빠져 한숨만 쉬어 대는 지금의 내 모습을 누군가가 본다면, 필시 얼마 전 여자 친구와 헤어진 채 칩거중인 인간으로 알 테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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