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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23 21:42 수정 : 2009.09.23 21:42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두어 달 전의 이야기다. 눈은 떴지만 잠에서 깨지 못해 뒹굴거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발신자를 보니 esc의 김은형 팀장. ‘아침부터 무슨 일일까?’ 여기서 아침이란 물론 극히 주관적인 시간개념으로, 당시 시계는 오후 2시 무렵을 가리키고 있었다. 마감이 아닌 때 걸려온 전화라 객원 필자인 나로서는 사뭇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 “그간 수고 많으셨어요.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인가 봐요”라는 최후통첩일지 어찌 아는가. 어쨌든 잔뜩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는데….

뜻밖의 전갈이었다. 9박10일짜리 해외여행 취재를 다녀오라는 것. 아아, 함께 일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배려에 대한 고마움과, 기회에 대한 반가움과, 일정에 대한 난감함 등이 제멋대로 뒤섞여서 뇌를 복잡하게 짓눌렀다. 출국까지 남은 시간은 불과 일주일. 바로 스케줄러를 확인했다. 떠나기 위해 그 기간 안에 끝내야 할 큰 일거리가 두 건 있다. 전화를 끊고 한참을 고민했다. 십수번을 고쳐 생각해도 엄두가 나지 않는다. 입술을 깨물며 전화를 걸었다. “배려해 주신 것은 정말 감사합니다만….”

여기까지가 당시 해외 취재 무산의 공식적인 이유다. 사실 출국을 위해 끝내야 할 일이 엄청나긴 했다. 하지만 일주일간 잠 안 자고 죽도록 매달리면 해치우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나. 그리고 해외 취재란 그렇게 절체절명의 노력을 기울여서라도 가볼 만한 것임을, 과거의 경험으로 나는 알고 있었다.(사적인 여행에서는 결코 먹을 수 없는 음식들하며…) 한데 떠나 있어야 하는 열흘 동안, 한창 승승장구하고 있던 이놈의 팀 경기를 못 본다는 것이 결국 발목을 잡았다. 아 뭐, 압니다. 바보짓 했다는 거. 프로야구가 올해까지만 하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그나마 지금 페넌트레이스 막판까지 치열하게 순위 싸움을 전개해 주고 있어서, 올 시즌 거의 전 경기를 거르지 않고 봤다는 사실에 야구와 함께한 그 어느 해보다 벅찬 자부심을 느끼고 있는 중. 네, 안다니까요. 그래도 바보짓은 바보짓이었다는 거.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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