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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9.16 18:40 수정 : 2009.09.16 18:40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엘롯기 동맹’이라는 말이 있다. 야구팬들에게는 지겨우리만치 익숙한 용어다. 엘지, 롯데, 기아 세 팀의 관계를 일컫는 것으로, 이들은 2001년부터 2008년까지 번갈아 가며 리그 꼴찌를 차지했다. 말하자면 하위팀 동맹이다. 하지만 작년에 롯데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했고, 올해는 기아가 우승권에서 놀고 있는 터라 이 동맹은 와해 위기에 놓여 있다.

동맹이 실질적으로 무너졌더라도, 야구 커뮤니티들을 돌아다녀 보면 암흑기의 찬바람을 잊지 못하는 세 팀 팬들 간의 우애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격세지감을 느낀다. 돌이켜 보면 프로야구 원년부터 10년이 훨씬 지난 무렵까지 기아 타이거즈의 전신인 해태 타이거즈와 롯데 자이언츠는 단순 라이벌 수준을 넘어 원수지간에 가까웠다. 당시 군사정부는 지역의 벽을 넘어 온 국민이 화합하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았고, 특히 프로야구를 통해 영호남의 지역감정은 첨예하게 충돌했다. 두 팀의 경기가 있는 날, 홈팀 응원석과 원정 응원석의 경계에서 물병, 컵라면 등이 날아다니는 건 다반사였고 홈팀이 지기라도 하면 선수단 버스는 폭도로 돌변한 관중들에게 포위당해야 했다.

2009년 현재 전국적으로 가장 많은 팬을 보유한 두 팀 또한 기아와 롯데다. 그 원천에, 과거 두 팀 팬들의 뿌리 깊은 지역감정과 뒤틀린 향토애가 굳건히 똬리를 틀고 있었다는 점은 부인하기 힘들다. 하지만 정말로 흥미로운 전개는 그다음이다. 서로서로 ‘경상도 문디’와 ‘전라도 깽깽이’들이 꼴 보기 싫었던 각자의 팬들은 생업 다음으로 야구에 목을 매달았고 그 영향은 그들의 자식에게로 이어졌다. 그리고 한 세대가 흘러 성인으로 자란 2세대 팬들은 그들의 부모로부터 단지 야구에 대한 열정만을 물려받았다. “지역감정? 그거 먹는 거임?”이라 말하는 이 젊은 팬들은 칙칙하기 짝이 없었던 야구장의 풍속도를 바꾸었고, 마침내 선대의 원수와도 기꺼이 동맹을 맺기에 이르렀다. 내가 보기에 이것이야말로, 저주받은 태생의 프로야구 27년사를 통틀어 가장 통쾌하고도 감동적인 풍경이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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