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9.02 19:34
수정 : 2009.09.02 19:34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모든 야구팬은 거짓말쟁이다. 매번 3연전이 시작될 때마다 말한다. 2승1패만 거둔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하지만 파죽의 기세로 2연승을 거둔 뒤엔 이야기가 달라진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마지막 경기도 꼭 잡아야 한다며 열을 올린다. 지기라도 하면 2승을 거둘 때의 그 늠름했던 모습은 잊고 팀에 대한 온갖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이런 경기력으로는 우승을 못하네, 이래 가지고서는 4강을 못 가네. 미래도 온통 흙빛이다.
모든 야구팬은 거짓말쟁이다. 근성 없는 플레이가 눈에 거슬리기는 누구나 마찬가지. 특히 박빙의 상황에서 스트라이크로 승부하지 못하고 볼질만 하다가 주자들을 차곡차곡 쌓는 새가슴 투수를 보면 억장이 무너진다. 그러다 밀어내기로 실점이라도 하면 눈에서 화염이 나온다. 야 이놈아, 왜 정면승부를 못하냐. 차라리 안타를 맞고 홈런을 맞는 게 낫지. 볼질 하는 건 눈 뜨고 못 봐주겠다. 과연 그럴까. 무턱대고 공격적으로 승부 들어가다가 연타 얻어맞으면 그때의 욕지기도 결국 투수에게 향한다. 에라 이놈, 왜 공을 안 빼고 계속 스트라이크 존에 넣어서 얻어맞냐.
모든 야구팬은 거짓말쟁이다. 팀의 성적이 좋지 않을 때는 당장의 승수 두어 개가 아쉽다. 순위표 몇 계단 위의 팀들을 보면 질시와 투덜거림만 남는다. 저 팀은 저렇게 잘하면서 투수가 없다느니 갈 길이 멀다느니 배부른 소리인가. 저러니 암만 야구를 잘해도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게지. 한데 제 팀의 승승장구가 시작되면 이 또한 남의 일이다. 승수 하나 빼앗기는 게 아까워 죽겠고 어지간히 잘하고 있는 선수들에게도 채찍질만 가하고 싶다. 더 많이 이겨야 하고, 더 잘 쳐야 하고, 더 좋은 투수들을 데려와야 해. 눈이 벌게져서 배부른 소리를 인터넷 게시판에 남겼다가 결국 빈축만 산다. 쳇, 못하는 팀 팬들이 이 심정을 알 리가 있나. 이렇게 야구라는 스포츠는, 건망증인지 허언증인지 모를 고질적인 증상의 환자들을 해마다 연인원 500만명 이상 배출하고 있다. 나를 포함하여.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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