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26 17:33
수정 : 2009.08.28 16:10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선수란 건, 사람이란 건 말이야, 본능적으로 게으른 거야.” 에스케이 와이번스에 2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안긴 명장 김성근 감독이 어느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김 감독은 흔히 관리야구의 대명사로 불린다. 다른 팀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혹독한 훈련으로 선수들의 잠재력을 최대치로 끌어낸 다음, 철저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세밀한 전략을 펼치는 것이 김성근식 관리야구의 핵심.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지만 과거 그가 80년대 태평양 돌핀스를 지휘할 때만 해도 훈련의 수준은 말 그대로 ‘공포의 외인구단’이었다고 한다.
관리야구의 김성근 감독, 그 정반대편에 롯데 자이언츠의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있다. 지휘관이기보다는 관리자에 가까운 메이저리그 감독 출신답게 그는 선수들의 자율을 중시한다. 단체 훈련은 다른 팀의 절반으로 줄였고 나머지 시간에는 선수 개개인이 자신에게 맞는 훈련을 하도록 했다. 실전에서도 감독의 세세한 작전보다는 선수들의 판단과 기량에 기대는 편.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부여한 이 정책은 상당 부분 효과를 보았다. 2000년대 초중반 내내 꼴찌 언저리에서만 맴돌던 롯데 구단이 최근 2년간은 가을야구 경쟁을 하고 있으니.
하지만 로이스터식 자율야구는 결정적인 대목에서 한계를 노출하곤 했다. 믿고 기다려준 선수들이 제 몫을 해준다면야 문제가 없다. 다만 모두가 슬럼프에 빠져 세밀한 작전으로라도 승부를 봐야 할 때조차 무력하게 지켜봐야만 한다는 거다. 그럴 때마다 나오는 이야기. ‘자율야구는 결국 이상인가?’ 김성근 감독도 덧붙인다. “우리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누구나 관리 속에 살아왔지, 자율 속에 살아오지 않았잖아? 학원 가라니까 가고, 외우라니까 외우면서 살아가잖아.” 구구절절 사무치는 이야기다. 이런 풍토에서 마침내 이기기 위해서는 결국 관리야구가 정답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굳이 야구에서까지 냉혹한 현실의 법칙을 재확인하고 싶지 않은 나는, ‘자율’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하나의 증거를 로이스터 감독이 꼭 남기길 바란다. 로망이라면 로망이고, 판타지라면 판타지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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