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8.19 19:53
수정 : 2009.08.19 19:53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1시간 가까이 고민했다. 글을 완성해 놓고 제목을 달지 못해서다. 머리를 더 굴려보지만 이러다 송고 시간을 어길 것 같다. 그냥 보내는 수밖에. 며칠 후, 기사로 뜬 원고를 확인했다. 슬그머니 미소가 떠오른다. 절묘한 제목. 편집자를 잘 만난 덕이다.
좋은 편집자는 야구의 좋은 포수와 같다. 어떤 공으로 승부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투수에게 프로텍터의 가슴팍을 치며 안심시키고 필살의 코스로 리드하는 포수처럼, 글의 실마리가 풀리지 않아 머리를 싸매는 취재기자나 필자에게 명쾌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편집자의 역할. 그러한 조언에는 ‘이 지면의 최종 책임자는 나다. 그러니 믿고 그렇게 써 보라’는 책임감이 깃들어 있다. 기획 의도에 맞게 썼다면 마감에 쫓겨 글이 다소 거칠어졌을지언정 그의 존재 덕택에 안심할 수 있다. 간혹 홈플레이트 언저리의 바닥을 치고 뒤로 튀어 나가는 폭투를 던져도 관록의 포수들은 귀신같은 동작으로 그 볼을 몸으로 막아내기 마련. 뜻하지 않게 호응구조가 어긋난 문장이라거나 쓸데없이 길어진 문장들도 유능한 편집자들의 손에서 확실히 걸러질 것이기 때문이다.
좋지 못한 투구로 경기에 패했을 경우, 여지없이 야구팬들의 도마에 오르는 이슈가 있다. 바로 포수의 투수 리드 문제다. 뻔한 공 배합으로 상대 타자와의 수 싸움에서 밀렸다거나 모험에 가까운 리드 때문에 결정타를 맞았다는 등의 내용이 그 요지. 하지만 많은 경우 그 비판은 결과론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포수가 투수의 공을 절대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는 것이 핵심이다. 아무리 뛰어난 포수라고 해도 제구가 엉망인 공을 얻어맞지 않도록 하거나 스트라이크로 만들 수는 없다. 이는, 기획 방향에서도 벗어난데다 문장도 거칠고 심지어 맞춤법까지 잔뜩 틀린 글이라면 세상의 어떤 편집자라도 손을 들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교열을 보고 다듬어서 그나마 문장답게 만들고 ‘새끈한’ 타이틀을 뽑아 독자들로 하여금 어쨌든 읽게 만드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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