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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29 18:53 수정 : 2009.08.01 10:36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빚 하나를 털었다. 오랜 기간에 걸쳐 조금씩 갚아 오던 채무다. 수입이 불안정하여 카드 돌려막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2000년대 초엽의 유산이다. 한때는 막막하기만 했지만 이젠 이 지긋지긋한 싸움도 슬슬 끝이 보인다.

독촉 전화에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했던 시절에는 하루에도 몇 번씩 1999년 12월 어느 날의 나를 증오하곤 했다. 생애 처음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날이다. 92학번 동기 박찬호의 연봉이 600만‘달러’를 돌파한 그해, 갓 졸업한 나의 연 수입은 600만‘원’이었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도 카드 하나가 우편으로 날아왔다. 휴대전화 사용자에게 제공되는 서비스 운운의 설명이 따랐던 것 같다.

빚이 산더미가 된 이후, 바로 그날 카드를 꺾어버리지 못한 나 자신에 대한 후회만큼이나 억울함 또한 커져 갔다. 수입에 맞춰 생계를 꾸리지 못한 책임은 당연히 나에게 있다. 하지만 심사를 등한시한 채 무작위로 카드를 발급한 회사들은 왜 책임질 생각을 하지 않느냐는 거다. 탕감해 달라거나 이자를 깎아 달라는 것도 아니었다. 채무자의 여건에 따라 나눠 갚을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제공해 줘야 마땅하지 않은가. 단기 회수를 지상 과제로 둔 카드사들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채무자들을 압박했고 심지어는 적지 않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 한 번이라도 독촉을 당한 이들이라면 그 공포감을 잊을 수 없다. 사람들은 돈 때문이 아니라, 독촉의 압박과 모멸감 때문에 죽는다.

타석에 들어선 타자가 세 번 헛스윙을 해도 1루에 나갈 수 있는 길이 야구에는 존재한다. ‘스트라이크아웃 낫아웃’ 규칙이다. 세 번째 스트라이크의 공을 포수가 놓쳤을 때, 그 실책만큼의 어드밴티지를 타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기록상 삼진아웃이고, 타자의 타율이나 출루율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하지만 다시 뛸 수 있는 기회는 준다. 서민들이 살기 좋은 사회는, 이런 낫아웃 같은 최소한의 안전망들이 확보된 곳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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