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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7.15 18:25 수정 : 2009.07.15 18:30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사람 좋으면 꼴찌’라는 야구계의 격언이 있다. 말하자면 지도자의 인격이 훌륭하다고 해서 팀이 좋은 성적을 내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두어 달 전, 프로야구 구단 히어로즈가 9연패 기록과 함께 꼴찌에서 맴돌 때 언론에서 이 말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히어로즈의 김시진 감독은 선수를 야단쳤다는 게 기삿거리가 될 정도로 한국 야구계에서 사람 좋기로 유명한 지도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리더 혹은 중간관리자의 위치에 서 봤던 이라면 고개를 주억거릴 법한 이야기다. 처음으로 사람들을 지휘하게 되었을 때만 해도 얼마나 포부가 컸던가. 전임자와 달리 나는 팀원들을 인격적으로 대하겠노라고. 하지만 그 다짐은 반년을 채 넘기지 못한다. 좋게 몇 번을 말했는데도 시킨 일은 전혀 되어 있지 않고 팀원들이 몰래 내 욕을 하고 다닌다는 뒷얘기마저 들린다. 실적이 안 나오다보니 윗사람에게 덤터기를 쓰는 것도 결국 관리자인 자신의 몫. 이런 상황이 수회 반복되다 보면 인내심이 끓는점에 도달한다. 하소연을 들어주던 술자리의 친구 녀석도 나름 준엄한 투로 꾸짖는다. ‘인마, 아랫사람 잘해 줄 필요 하나도 없어.’ 아, 참으로 옳다. 잘해 줘도 욕먹고 못해 줘도 욕먹을 바에야 차라리 폭군이 되자. 고함 몇 번 지르고 서류 몇 번 내동댕이쳤더니 사무실이 좀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 욕할 테면 해라, 이것들아.

많은 이들이 이렇게 상처를 받으면서 나름 엄한 리더로 성장해 간다. 사실 돌이켜보면 사람이 좋고 나쁜 게 문제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인격’이라는 방패 뒤에서 우유부단했던 게 문제였을 뿐. ‘사람 좋으면 꼴찌’라지만 지도자로서 받았을 대내외의 압박과 상처를 딛고도 여전히 인격자라고 불릴 수 있다면, 그 심지야말로 진실로 강하고 무서운 것이 아니겠는가. 언론의 비아냥일랑 가뿐히 무시하고 이후 놀라운 성적과 함께 플레이오프 진출을 위한 4강 싸움의 핵으로 떠오른 히어로즈와 김시진 감독에게 박수를 보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조민준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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