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9.06.24 19:09
수정 : 2009.06.24 19:17
[매거진 esc] 투쓰리 풀카운트
심기가 불편하다. 공기 청량하고 바람도 선선한데, 저녁 내내 안절부절이다. 얼이 빠진 듯 모니터 앞에서 닥치는 대로 즐겨찾기 사이트들을 클릭해 댄다. 마우스를 쥔 손에 다소의 신경질이 감돈다. 왜 기분이 이 모양일까? 오늘 하루 딱히 건덕지도 없었는데. 시계를 보니 저녁 7시30분. 그랬구먼. 오늘은 월요일. 야구 경기가 없는 날이다.
직장인들이 월요병에 시달리는 것처럼, 프로야구팬들에게도 월요병이 있다. 주중 야구 경기가 없는 유일한 날인 월요일 저녁의 금단증상이다. 그러니까 직장인 야구팬들은 이중의 월요병에 시달리는 셈이다. 그나마 출근에 대한 추상적인 공포심이 상당 부분 해소된 월요일 저녁 무렵 활성화된다는 게 이 금단증상의 특징. 다른 날 같았으면 경기가 시작되었을 6시30분쯤 불안감은 최고조에 이른다. 알코올 의존자들이 커뮤니티를 통해 증상을 극복하듯, 야구팬들의 월요병 역시 같은 질환에 시달리는 이들과 함께 푸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여 야구 동호회 게시판을 여기저기 기웃거려 본다. 옳거니, 마침 구단주 놀이가 한창이다. ‘우리 팀 백업 유격수랑 그쪽 불펜 투수랑 바꾸면 서로 윈윈할 것 같은데 말이죠.’ ‘에이 어림없는 소리 마쇼. 걔는 못 내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을 김칫국 마시기로 한참을 때웠다. 이 놀이도 시들해지면 ‘추억의 명승부전’ 따위의 영상에 슬그머니 다시 손이 간다. 보고, 또 보고, 일백번은 고쳐봤을 역사 속의 경기건만 의미 없이 과도한 열정은 매번 반복된다. ‘아유, 저게 안타만 되었어도.’ ‘저기서 왜 도루를 하냐?!’ 그러다 끝내기 홈런에 환호. 아, 한심하다. 보는 눈이 없어서 망정이지.
이래선 안 된다. 야구 없는 김에 하루라도 바깥 공기를 쐴 일이다. 간만의 약속들을 죄다 월요일로 몰아 버렸어야 했다. 벌써부터 이 지경이면 도대체 기나긴 스토브리그는 어떻게 버틴단 말인가.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던 그때, 텔레비전 뉴스의 한줄 자막은 ‘이번주 장마전선 북상’ 소식을 전하고 있었다.
조민준/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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