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사람을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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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금태섭, 사랑을 건너다
연말연시를 사랑과 연애의 계절이라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좀더 중요한 일이 있다. 바로 아부다. 부서 회식, 사장님이 주최하는 직장 송년회, 1년에 한 번 모이는 동문 모임 등 가는 곳마다 우리의 교언영색을 기다리는 상사, 선배, 윗사람들이 줄 서 있다. 지난 한 해 동안 찍혀서 구박받던 처지를 한 번에 뒤집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부장님의 눈에만 보이는 미운털을 탈색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다. 혹자는 아부라는 말을 들으면 정색을 하고 그런 짓을 해서 출세하면 뭐하냐, 영혼을 파는 짓이라며 열을 낸다.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우선 어쩌다 아부 좀 한다고 출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냥 재미로 하는 것이다. 언젠가 부장님 즐거우시라고 연말 회식자리에서 이문열의 문장을 패러디해서 아양을 떤 일이 있다. “흐르는 물 같은 말솜씨라 한들 부장님의 자상한 성품을 얘기함에 있어 어찌 떨림이나 멈춤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하늘을 감동시키고 귀신을 놀라게 하는 글재주라 한들 부장님을 향한 저의 마음을 고백하는데 어찌 처음과 끝이 하나같이 가지런할 수 있겠습니까, 부장님은 저희의 하늘이십니다.” 하라는 일은 안 하고 며칠 고심 끝에 생각해낸 아첨에 부장님은 무릎을 치면서 좋아하셨지만 다음번 인사고과에는 전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영혼을 파는 것도 아니다. 말로는 뭘 못 하나. 잠깐 웃자고 입에 발린 소리를 늘어놓는다고 해서 고결한 인품에 흠이 가지는 않는다. 불우이웃도 돕는데 매일 만나는 상사를 위해서 1년에 한 번쯤 재롱을 떤다고 해서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모처럼 연말에 부장님께 잘 보이려는 분들께 한때 내로라하던 아부의 달인으로서 힌트 한 가지 드린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의 아부는 외모를 칭찬하는 것이다. 아무리 후줄근한 상사도, 며칠씩 똑같은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선배도 혼자 거울을 들여다볼 때는 자기가 잘생겼다고 생각한다. 눈 딱 감고 정말 어려 보이신다고 한번 해드리자. 아저씨도 수줍게 웃으면서 좋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단순히 잘생기셨다고 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디테일하게 칭송해야 한다. 피부가 깨끗하다느니, 어깨가 탄탄해 보인다느니 개성 있는 아부만이 비결이다. 물론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나이에 비해 유난히 새치가 없는 분, 작년이나 올해나 머리카락에 변화가 없는 분, 이런 분들께 아부한답시고 “선배님은 정말 머리숱이 많고 윤기가 흐르네요”라고 했다가는 큰일이 나는 수 있다. 가끔씩 가발을 쓰시는 분들이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실수를 저지른 경우를 본 적이 있는데 서로 민망해하는 얼굴을 차마 보기 어려웠다. 연말연시를 맞아 기억에 남을 아부에 성공하기를 바란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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