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사람을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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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금태섭, 사랑을 건너다
사람들을 화해시키는 방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심하게 싸우고 반목하는 사람들의 감정을 풀어주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합리적인 설득? 이해관계의 조정? 글쎄, 나는 몰래 편들어주기와 반대편에 대한 헐뜯기라고 생각한다. 흔히 범죄의 원인으로 돈이나 치정문제를 들지만 가까운 사이에서 목숨 걸고 싸우는 것은 대부분 자존심 때문이다. 이런 다툼을 해결하는 데는 자존심을 달래주는 교묘한 술책과 거짓말이 필요하다. 후대의 칭송을 받는 황희 정승도 큰 실수를 저지르신 일이 있다. 전해오는 얘기는 이렇다. 하인 두 명이 사소한 문제로 싸우다가 한 명이 황희 정승께 하소연을 하자 정승께서는 “그래, 네 말이 옳다”고 하셨다고 한다. 이것을 본 상대방이 이의를 제기하자 “그래, 네 말도 옳다”고 하셨다고 한다. 다시 정승의 부인께서 어떻게 두 사람의 주장을 모두 옳다고 할 수 있느냐고 타박하자 “응, 듣고 보니 부인의 말도 옳구려”라고 하셨다는 것이다. 그래도 주인만은 억울한 사정을 알아주실 줄 믿었던 하인들은 가슴을 치면서 눈물을 흘렸다. 속 터지는 소리에 열 받은 부인은 황희 정승을 흘겨보다 고개를 돌려버렸다. 일부에서는 이 일로 황희 정승이 사소한 시비에 초연한 대인의 풍모를 보였다는 평판을 듣게 되었다고 말을 하지만 정작 집안의 평화를 회복하는 데는 완전히 실패한 것이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 두 놈이 서로 싸운 후 각각 따로 찾아와서 신세 한탄을 했다.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때마다 그 자리에 없는 친구의 욕을 했다. 적당히 화해하라는 충고나 들을 것으로 생각했던 친구들은 뜻밖의 반응에 황당해하다가 겸연쩍은 표정으로 돌아갔다. 얼마 뒤 두 놈이 다시 사이좋게 지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자존심이 상한 사람은 다른 무엇보다도 위로를 해주어야 한다. 아직 감정이 가라앉지도 않은 상태에서 설득을 하려고 들면 화만 더 나게 할 뿐 효과를 보기 어렵다. 화해를 시키고 싶으면 일방적으로 편을 들어주면서 상대방 욕을 하는 것이 좋다. 자기보다 더 흥분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당사자는 오히려 열이 식으면서 정신을 차리게 된다. 그러다 보면 애초에 다투기 시작했던 일이 별것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슬그머니 꼬리를 내리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방법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도 되느냐, 친구를 무시하는 처사 아니냐는 비난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괜한 일로 자존심을 걸고 싸우는 놈들에게 거짓말을 좀 하면 어떤가. 황희 정승께서도 한 노인이 소들의 감정을 다칠까 봐 검은 소 몰래 누렁소를 칭찬하는 것을 보고 감탄하지 않으셨던가.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쓸데없는 일로 흥분하고 있을 때는 소나 별 차이가 없다. 그저 몰래 다가가서 잘한다고 해주는 것이 상책이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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