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사람을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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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금태섭, 사랑을 건너다
케네스 브래너 감독의 1991년 영화 <환생>에서 면허를 박탈당한 정신과 의사(환자랑 잤다)로 나오는 로빈 윌리엄스는 담배를 끊으려고 노력하는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는 흡연자와 비흡연자가 있지. 그 중간은 없는 법이야. 자기가 어디에 속하는지 알아서 그대로 밀고 나가게. 만일 자네가 비흡연자라면 스스로 깨닫게 될 거야. 끊으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결코 금연하지 못하는 나약한 자들일 뿐이야.” 말이야 멋진 말이지만 그게 어디 쉬운가. 사실 담배를 끊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다면 금연하겠다는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일단 어딘가에 중독되게 되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 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일이 흔하다. 흡연으로 건강을 해치는 것만도 서러운데 의지가 박약하다는 죄책감에 시달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퇴근 후 심심풀이 삼아 치던 고스톱에 빠져서 밤을 새워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귀갓길에 자기 손가락을 내려다보면서 잘라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던 기억을 틀림없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며칠 다이어트를 하면서 아침마다 체중계에 오르다가 한밤중에 몽유병에 걸린 듯 깨어나 해치워버린 삼겹살 1㎏에 죽고 싶은 심정이 되어보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대부분의 가벼운 중독이나 탐닉은 사실 별로 해롭지 않다. 문제가 시작되는 것은 오히려 그것으로부터 벗어나야겠다는 결심이 집착으로 변할 때다. 결혼한 지 10년이 지나도록 담배를 피우는 것을 아내에게 감추고 살면서 퇴근할 때마다 양치를 하는 직장 동료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게임 시간을 일주일에 10분밖에 허락받지 못하는 아이를 위해서 대신 레벨을 올려주는 아빠의 모습도 서글프긴 마찬가지다. 대부분의 불화는 자신이나 다른 사람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기 때문에 생겨난다. 스토커가 되거나 폭력에 물들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이상 약간의 즐거움과 여유를 누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한 번도, 아무것에도 빠져 보지 않은 인생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중독을 벗어나는 것은 절대로 불가능하고 노력도 하지 말아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환생>에는 또 한 명의 인상적인 흡연자가 등장한다. 폐병으로 기관을 절개한 채 양로원에서 살아가는 앤디 가르시아는 자신을 찾아온 브래너에게 구걸하다시피 담배 한 가치를 얻는다. 영화 내내 담배를 끊지 못하고 갈등하던 브래너는 가르시아가 목에 꽂힌 대롱으로 담배를 피우고 연기를 내뿜는 모습을 보는 순간 금연에 성공하게 된다. 살면서 단호한 결심을 하고 변화해야 하는 때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일 일어나는 일도 아니고 집착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순간이 아닌 한 스스로에게 너무 엄격할 필요는 없다.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는 법이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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