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사람을 건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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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esc] 금태섭, 사랑을 건너다
너무나 윤리적이고 소심한 탓에 직접 경험한 일은 거의(!) 없으나, 다녀온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우리나라 나이트클럽의 풍경은 정말 특이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연애를 하는 것이 잘못된 일도 아니고 청춘 남녀가 춤을 추는 곳에 모였는데 막상 스스로 맘에 드는 상대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없다. 웨이터한테 손목을 잡혀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테이블에 가서야 비로소 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주고받는 이야기의 내용도 어색하기 짝이 없다. 김건모의 노래가 나온 지 언젠데 아직도 “어떻게 오셨나요, 누구랑 오셨나요.” 타령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세계에서 달변으로 존경받는 후배에게 요령이라도 배울까 해서 도대체 처음 만난 사람과 무슨 이야기를 하느냐고 물어봐도 뾰족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그냥 남들 다 하는 얘기를 매너 있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재미있는 모험담을 기대하던 마음은 실망으로 바뀐다. 우리가 꿈꾸던 연애는 그렇게 소극적이고 구태의연한 것이 아니다. 하루키의 신작 <1Q84>의 여주인공 아오마메는 이성을 유혹할 때 어떻게 대담함과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준다. 연쇄살인범인 그녀는 살인을 하고 나면 긴장감을 해소하기 위해서 술집을 찾는다. 마음에 드는 상대를 고르고 나서 당당히 옆자리에 앉는다. 몇 마디 인사말을 나눈 다음 그녀는 솔직하게 질문을 하나 해도 좋겠느냐고 한다. 그리고 상대방이 좋다고 대답하면 이렇게 묻는 것이다. “당신 고추는 큰 편?” 그녀라고 해서 항상 유혹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 평생 잊지 못할 추억과 얘깃거리를 안겨주는 것만은 틀림없다. 훌륭한 유혹의 기술이란 당하는 사람의 기분도 좋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들과 다른, 절대 잊지 못할 연애 경험을 갈망하면서도 막상 처음 말을 걸 때는 철지난 유행가에나 등장할 대사를 하고 만다. 망신을 당하기보다는 안전한 길을 택하는 것이다. 더구나 나이트클럽에서는 아무리 맘에 안 들어도 잠깐은 함께 앉아 있다가 다시 오겠다고 하면서 사라지는 것이 매너라고 하니 겹겹의 안전장치가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식으로 살면서 소설 같은 만남을 바라는 것은 공상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만나자마자 꼭 고추가 크니 작으니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사람으로 몰릴 수도 있고 자칫 따귀를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비록 하룻밤일망정 사랑을 얻기 위해서 용기를 내고 상상력을 동원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좋지 않은가. 나중에 생각할 때 창피해서 얼굴을 붉히게 되더라도 무슨 상관인가. 적어도 이 자리 저 자리 끌려다니면서 언제 오셨느냐는 말이나 하는 것보다는 참신하지 않은가.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은 웨이터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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