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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9.06.17 19:02 수정 : 2009.06.18 13:00

금태섭, 사람을 건너다

[매거진 esc] 금태섭, 사람을 건너다

사람들은 왜 거짓말을 할까. 대개는 겁이 나기 때문이다. 자기가 알고 있는 진실로 세상에 맞설 자신이 없을 때 무언가를 꾸며대는 것이다. 하지만 거짓말을 하는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짐작할 수도 없는 이유로 거짓말을 한다. 내가 경험한 최대의 거짓말은 재소자가 쓴 한 장의 편지에서 시작된다.

“존경하는 김 형사 형님께. 형님, 앞으로는 형님을 형사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형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죄 많은 저에게 너무나 자상하게 대해주시는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곳 교도소에서 형님을 생각하며 반성의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늘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된 것은, 정말 부끄러운 일이지만 제가 저지른 또다른 잘못이 있어서 형님께 말씀드리고 용서를 구하기 위해서입니다. 형님, 저는 3년쯤 전에 사람을 죽인 일이 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였는데 순간적으로 눈이 뒤집혀 저도 모르게 그만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

이 믿기 어려운 편지는 초임 시절 내가 근무하던 검찰청을 뒤흔들어 놓았다. 절도죄로 수감 생활을 하던 사람이 자기를 구속시킨 담당형사에게 편지를 보내서 살인죄를 저질렀다고 털어놓은 것이다. 당장 자백의 진위를 가리기 위한 수사가 시작되었다. 사건이 일어난 지 오래 지나 증거를 찾기 어려웠지만 확인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피해자의 손에서 빼낸 금반지를 재래식 화장실에 버렸다고 말했고 담당형사는 몇 년간 쌓인 분뇨를 뒤지는 노력 끝에 반지를 찾아내고 말았던 것이다. 장기 미제 살인 사건을 해결할 줄 알았던 우리의 흥분과 기대는, 유전자 감식 결과 산산이 부서졌다.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정액과 피의자의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가 막혀서 추궁을 하는 검사에게 그는 공범이 있었다는 황당한 변명을 하다가 결국 허위 자백을 했다고 말하며 용서를 빌었다.

내가 겪은 최대의 거짓말은 이렇게 허탈하게 끝나고 말았다. 도대체 그 재소자가 왜 살인을 했다고 자백을 했을까. 용의자로 의심을 받지도 않았고 수사관으로부터 추궁을 당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 속을 들여다볼 수는 없는 일이지만 나는 심심해서였다고 생각한다. 감방에 갇혀서 멍하니 있느니 소동이라도 일으켜 볼 심산이었을 것이다. 드물지만 가끔 있는 일이다. 심심해서 살인죄를 자백한다는 것이 믿기 어렵다고? 재래식 화장실에서 나온 금반지는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증거는 없지만 아마도 그 반지는 재소자의 자백을 진실로 믿은 “형사 형님”이 던져놓았을 것이다. 그 형사는 사건을 해결하고 정의를 세우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유로 거짓말을 한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할 때도 때로 긴장하게 되는 것은 도대체 사람의 마음속을 확실히 아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말을 근거로 직접 겪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확실히 안다고 단언하는 사람을 보면, 글쎄, 그 용기가 부러울 따름이다.

금태섭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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